참여정부의 전 · 현직 핵심 관료들이 한 · 미 FTA 협상의 추진여부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현직관료들은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특정분야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협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직 청와대 인사들은 정부가 제시하는 협상효과는 모두 경제학적으로 실현불가능하다고 지적하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같은 참여정부 전 · 현직 관료들의 논쟁은 지난 16일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의 해양수산부에 대한 국정감사장에서 벌어졌다.
당초 이날 국정감사는 해양수산부의 업무점검을 위해 마련된 자리였지만 언론의 초점은 출석한 증인과 참고인에 대한 의원들의 심문에 모아졌다.
이날 증인과 참고인으로는 현재 한 · 미 FTA 협상을 이끌고 있는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실무협상을 책임지고 있는 김종훈 협상단 수석대표가 참석했다.
그리고 참여정부의 핵심 정책통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측근 역할을 맡았던 이정우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와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이 증인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전 · 현직 ‘노무현의 사람들’은 한나라당 그리고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각각 짝을 짓고 한 · 미 FTA 협상 진행여부에 대해 결렬한 언쟁을 벌였다.
먼저 한나라당 홍문표 의원(충남 홍성, 예선 · 초선)이 현직 협상단을 상대로 포문을 열었다. 홍 의원은 현재 실무협상을 책임지고 있는 두 인사가 농촌실정을 전혀 모르는 이력을 가졌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수산물을 공산물에 포함시켜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진의에 대해서도 캐물었다.
이에 대해 김 수석대표는 “농어업 분야에 직접 근무한 적은 없지만 현재 많은 자료를 습득하고 있고 실무단 농업분과를 통해 여러 견해들을 참고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수산물을 공산품에 포함시켜 협상을 진행한 이유는 사안에 대해 한 · 미간 이견이 있었기 때문에 WTO의 전례를 따른 때문이고 별도로 분류해 협상을 진행할 경우 미측을 상대로 공세를 취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해명했다.
이어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비례 · 초선)은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이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쌀을 빼면 우리가 열위인 품목은 전체 농업의 2% 뿐이므로 한 · 미 FTA를 겁내지 말라'는 요지의 글에 대해 엄중경고하며 해당 글을 자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수석은 “해당 글은 협상체결로 인해 우리가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취지가 아니라 정부와 농림부의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하며 강 의원의 요구를 거절했다.
강 의원은 이에 더해 4대 선결조건을 수용한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도 맹비난했지만 김 본부장은 미국 측의 4가지 요구 가운데 스크린쿼터 완화를 제외하면 수락한 것이 없다며 강 의원의 공격을 피해나갔다.
또한 정 전 비서관은 한 · 미 FTA 협상이 갑작스럽게 추진된 것이 아니냐는 강 의원의 질문에 “당초 정부는 중국, 미국과의 FTA 협상을 가장 나중에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김 본부장이 실무협상을 진행하면서 한 · 미 FTA 협상을 먼저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 전 비서관은 한나라당 김재원 의원의 질의시간을 이용해 정부가 제시하는 한 · 미 FTA 협상체결 효과의 허구성을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당초 한 · 일 FTA 협상은 3년간 준비했다. 관련 연구도 120여권이 넘는다. 그러나 한 · 미 FTA 연구보고서는 2권에 불과하다. 하지만 일단 대통령께서 정책결정을 내리고 드라이브를 걸면 거기에 맞는 수치를 가진 연구결과들이 나온다. 하지만 관련 테스크 포스에서 작성한 보고서에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많다. 협상체결로 우리 경제가 연평균 12% 성장한다는 주장은 경제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정책추진자의 구미에 맞춘 보고서다. 멕시코의 경우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FTA 체결 당시 국내 임금수준이 낮아 외국인 투자가 활발히 들어와 일자리와 무역이 늘어난 것일 뿐이다”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기획실장 역시 정 전 비서관의 의견에 동의하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FTA 예찬론이 있는데 경제학적으로 봤을 때 한계 있다. 효과에 대한 명확한 증거도 없다. 멕시코가 가장 많은 협정을 맺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협상 안 한다. 그리고 FTA 자체가 양방주의이기 때문에 다자주의에 역행 한다. 국제적으로 높이 평가할 것은 못 된다. 게다가 정부가 강조하는 무역이익의 경우 미국의 관세율 차이로 봐서 공산품 쪽에서 무역이익을 기대할 것이 없다. FTA가 촉발할 양극화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사회안전망이 부족한 나라다. 단기간에 FTA로 갔을 때 사회적 파장은 대단할 것이다. FTA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 · 미식 FTA가 문제다. 우리 경제체질 전체의 변화를 요구하고 좀 더 완연한 시장주의로 몰고 갈 것이다. 우리가 가야할 방향과 모순된다. 그것이 국내 개혁을 저해하고 우리가 추구할 바람직한 시장모델로 가는 것을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현직 협상단의 반격도 거셌다. 김 본부장은 "2003년 정부 내에서 논의가 본격 시작된 이후 수차례의 대외경제장관회의 등을 통해 착실히 한 · 미 FTA를 준비해온 만큼 '졸속'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멕시코의 무역수지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하기 전에 10억달러 적자에서 2005년에는 650억달러 흑자로 돌아섰고, 1994~2005년 사이에 993만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고 소개했다.
또 "미국에서 현대 쏘나타가 (일제) 어코드와 캠리와 경쟁해 1천700만원 정도 하는데 관세 2.5% 내려가면 560달러 저렴해진다“고 FTA 효과를 설명했다.
전 · 현직 참여정부 핵심관료들의 날선 대립을 유도한 여야 의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상대 진영을 자극하며 국감장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나갔다.
열린우리당 이영호 의원(전남 강진, 완도 · 초선)은 이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과거 FTA 찬성 요지가 담긴 논문내용을 소개하며 “이제 와서 한 · 미 FTA 협상에 딴지를 거는 이유는 각료에 입각하려던 뜻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냐!”고 이 전 실장에 대한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한나라당 김재원 의원(경북 군위, 의성, 청송 · 초선) 또한 노 대통령의 한 · 미 FTA 협상 강행추진에 음모론을 제기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현재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두 인사들이 ‘팽’ 당할 수도 있다는 점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증인심문에서 두 협상대표는 이번 협상타결에서 쌀은 반드시 제외시킬 것이라고 약속했다. /여의도통신=유광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