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쌀개방 반대·식량주권 사수를 위한 담양군농민대회'에 참석키 위해 군청앞 도로에 모여든 수많은 농민들은 하나같이 정부의 살농정책을 성토하고 농민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쌀개방 협상에 대해 강도 높은 비난을 퍼부었다.
정부를 성토하고 비난하는 것은 비단 농민들만이 아니었다. 지난 7일 수북농협과 창평농협을 비롯한 전남도내 50여개 농협 조합장들도 '쌀개방 반대·식량주권 수호를 위한 조합장 선언'을 발표했으며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오종렬 상임의장)도 대의원 일동 명의로 쌀개방저지·식량주권수호를 위한 대의원 선언을 발표했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은 이날 발표한 선언문을 통해 "군사무기보다 위력적인 식량을 무기 삼아 이 땅을 장악하려는 거대곡물메이저의 명백한 주권침략을 강력히 거부한다"고 밝히고 "제나라 주권마저 팔아 넘기려는 개방만능론자들의 주장은 사대매국적인 행각에 다름없다"며 애국애족의 길로 돌아설 것을 촉구했다.
이와함께 불교인권위원회와 불교평화연대 등 불교인들도 식량주권 선언을 발표하고 "농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불교인들도 우리 쌀 지키기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산간 토지를 이용해 과실수심기 운동, 채소 심기 운동, 약초 재배 운동, 기타 필요한 농작물 심기 운동을 벌여 이를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공급하자"고 호소했다.
8일에는 명동성당에서 종교인 선언이 발표됐고 전국 농학계열 대학생들은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식량주권선언 기자회견을 열어 쌀개방찬반투표 결과 발표와 함께 우리쌀로 만든 떡 나눠먹기 등의 행사와 서명운동을 벌였다.
영화인들도 쌀개방 반대에 나섰다. 영화인들은 '문화가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의 대상이 될 수 없듯이 농업도 자유무역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인권이자 안보인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농민들과 함께 싸울 것임'을 천명했다.
농민단체들은 또 오는 22일 도내 각 시 군별로 '논 갈아엎기' 투쟁을 통해 농민들의 의지를 대내외에 알리는 한편 10월 말 부터는 농수산물 출하거부 투쟁에 나서기로 하는 등 투쟁 수위를 높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쌀개방을 둘러싸고 전국이 한차례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 같다.
예로부터‘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이라 하여 하늘아래 제일 근본이라 여겨왔던 우리 농업이 UR, WTO를 거쳐 FTA라는 거센 물결에 휘말려 이렇듯 악전고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옛 풍습 중에 과수원에서 과일을 수확할 때 몇 알은 그대로 나무에 남겨두는 것과 벼 추수 때에도 이삭을 전부 다 줍지 않고 새들이나 짐승을 위하여 남겨두는 관습이 있었다. 이것은 하찮은 짐승일지언정 이들을 배려할 줄 아는 삶의 지혜를 우리 조상들이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겨울동안 먹을거리에 궁한 새들과 짐승들에게는 농부들이 들판에 남겨둔 과일과 이삭이 어려운 겨울나기에 다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착한 우리의 선조 농부는 매년 반복적인 경험에 비추어 이듬해 봄에 찾아올 보릿고개를 모를 턱이 없었지만 자연의 섭리와 인간적 순리를 존중하고 순응하며 살아왔다.
이렇게 순박하고 착하게만 살아온 우리네 농부들을 투사로 변모시켜 길거리로 몰아낸 데에는 시장경제논리에 입각해 농업을 경쟁력 없는 산업으로 치부해 온 정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동안 우리 것에 무관심해왔던 상당수 국민들의 책임도 크다.
일본은 국민들 스스로가 자국 농산물을 고집하다보니 수입농산물이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일본정부에서 아무리 수입을 하려해도 수입물량은 미미하기 그지없고 농민들도 수입을 하건 말건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 국민들도 고집스럽게 우리 것만을 찾는다면 정부도 개방을 하네 못하네 하며 고민할 필요가 없어질 것 같다. 국민들이 알아서 그렇게만 해 준다면 농민들도 악착같이 싸워야 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예상했던 대로 쌀개방 협상은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협상국들의 거센 요구가 정부로서는 버거울 수밖에 없고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나든 우리 농민들에게는 또 한차례 찢어지는 아픔을 안겨줄 것 같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성큼 다가선 가을을 느끼게 한다. 유난히 무더웠던 올 여름의 더위를 풍년의 기대로 달래가며 다가올 추석은 그래도 풍성하리라 여겼지만 눈앞에 닥친 우리 농촌의 현실은 비통하기만 할 따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