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분고후지’라고 불리는 유후다케산(해발 1584m)을 비롯, 수많은 산으로 동그랗게 둘러싸인 마치 潭陽같은 분지. 대숲과 온천이 있는 유휴인에 들어서니 아늑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미래의 潭陽, 일본의 생태전원도시 '유휴인'
1박2일에 걸친 도쿄, 요코하마에서의 생태주거단지 타마뉴타운과 고호쿠뉴타운, 생태환경시설 빗물박물관 취재를 마치고 큐슈 오이타현 유휴인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멀고도 긴 여행이었다.
요코하마驛에서 오후 3시30분에 신깐센을 타고 장장 1500㎞ 떨어진 큐슈 후쿠오카의 하까다역까지는 시속 300㎞ 로 달리는 신깐센 특급열차로도 무려 5시간이나 걸렸다.
밤이 돼서야 도착한 하까다驛 근처의 호텔에 여장을 풀고 다음날 취재지역인 생태전원도시 유휴인, 녹색농촌체험 명소에 관한 일정을 점검했다.
▣ 유휴인(湯布院)
일본내 가장 아름다운 생태전원도시 이자 관광명소로 손꼽히는 유휴인은 우리 潭陽과 아주 흡사한 곳이다. 수려하고 때묻지 않은 자연환경을 가진 것이 그렇고, 인구나 시가지 거리 모습 또한 담양읍과 거의 비슷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유휴인으로 들어가는 길목엔 푸른 대나무숲이 터널을 이루며 마치 대나무골 담양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도 그렇다.
다만 한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이곳엔 온천이 있고 이 온천과 수려한 자연환경을 그대로 보존, 활용해 일본뿐아니라 세계적인 문화관광 명소로 가꾸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인 이곳 유휴인은 언제 찾아봐도 감동을 주는 곳임에 여전했다.
한해 관광객 400만명에 관광소득만 1500억원을 벌어들이고 있는 인구 1만3000명의 일본내 작은 소도시 유휴인은 향후 우리 담양의 미래의 모습이 될 것임을 확인하면서 유휴인의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일본 규슈(九州)지방의 대표적 온천도시 뱃부(別府)에서 큐슈 산악도로를 따라 자동차로 40분을 달려 만날 수 있는 유후인(湯布院).
그곳에는 사람과 자연환경, 문화예술이 한데 어우러진 그림같은 전원도시가 펼쳐져 있다. 척박한 농촌 소도읍에서 일본 제1의 휴양관광명소로 거듭나기까지에는 주민과 자치단체가 공동으로 일구어낸 유후인 마을의 드라마틱한 역사가 숨겨져 있었다.
담양읍과 지역여건이 매우 흡사한 유휴인은 크게 나누어 시가지 지구, 문화예술촌 지구, 온천 지구 3구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시내 거리는 우리와는 달리 거의 모든 가게들이 관광기념품과 지역특산품, 토산품, 문화예술품 등을 전시 판매하고 있고 가게마다 아담하게 가꾼 꽃화단에 전통을 살린 간판과 인테리어로 시내 거리 조차도 온통 관광명소 이다.
문화예술촌은 유휴인 관광의 白眉로 이곳에는 온천이 솟아나는 호수(킨린호)를 배경으로 미술품·공예품·토산품을 비롯해 전통식품과 특산품, 공산품 가게는 물론 각양각색의 전시관과 민예촌 등이 들어서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온천지구에는 일본 특유의 아담하고 아름다운 정원을 갖춘 일본전통 여관인 료칸, 민박촌, 전통음식점, 찻집, 카페이 자리잡아 조용하고 아늑하고 휴양을 즐기는 관광객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유휴인 시가지
관광객들은 유후인의 관문인 유후인역에서 부터 감탄사를 연발한다. 기차에서 내리면 철로변에 마련된 노천 족탕(足湯)이 우선 시선을 붙잡는다.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신선한 바람 속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족욕을 즐기고 있고 驛舍로 들어서면 과연 이곳이 驛일까 하는 의아심이 생긴다.
역대합실을 갤러리로 꾸며 1년 내내 전시회를 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합실 갤러리는 처음엔 지역민들의 작품만을 전시했었지만 이제는 일본 전국에 알려져 월1회씩 연간 12회 가량 전시회를 갖고있고 전시회 기회를 따내기 위한 경쟁도 매우 치열할 정도로 명소가 됐다. 그도 그럴것이 한해 400만이 넘는 관광객이 넘쳐나는 곳이니만큼 이곳에서 전시회를 갖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작가 입장에서는 큰 기회가 아닐수 없을 것이다.
역사를 나와 시내에 들어서면 유후인 시가지는 거리 전체가 관광지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낮은 지붕의 고풍스런 전통가옥이 줄지어 서 있고 좁지도 넓지도 않은 거리의 상점은 저마다 독특한 분위기로 장식돼 있다. 온 동네가 인사동 거리처럼 아기자기하다. 그런 시가지 길은 온종일 걸어도 지루하지 않다.
驛에서 이곳 주민들이 수호신처럼 여기는 유후다케산(由布岳, 해발 1584m)쪽으로 뻗어있는 작은 길을 따라가면 마치 서울의 인사동을 연상시키는 전통공예품·기념품·토산품 상가가 줄지어 들어서 있고 꽃과 수목으로 장식한 거리는 물론이고 지역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는 거리와 전통식품을 파는 거리가 별도로 형성돼 있고, 가게마다 작은 정원처럼 가꿔놓은 듯 꾸며놓은 소품들 하며...
관광객을 위한 말이 끄는 역마차, 영국풍 클래식 미니 관광버스도 驛에서 문화예술촌·온천지구까지 왕래하며 이국적 풍경과 여행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문화예술촌·온천지구
문화예술촌으로 들어서면 장인(匠人)들의 작업실을 볼 수 있는 전통 일본식 가옥들이 즐비한 각양각색의 예술공간과 민예촌, 유후인미술관과 샤갈미술관 등 30여개에 달하는 미술관과 200여개의 관광기념품·토산품 상점, 전통음식점·찻집들이 관광객들을 시선을 집중시키며 지갑을 열게한다.
잉어비늘이 금빛으로 보인다는 킨린(金鱗)호수와 그 사이사이에 자리한 일본 전통식 여관, 온천탕은 유휴인 관광의 마지막 코스. 이곳에서는 일본 전통과 풍습을 체험하며 아늑하고 조용한 휴양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되어 있다. 마치 숲속의 정원처럼 평온하게 가꿔놓은 전통 료칸(여관)과 민박집에서는 개인 온천욕을 즐기고 旅毒을 풀 수 있고 새벽녘 안개처럼 호수를 감싸는 온천 증기를 바라보며 즐기는 온천은 가히 압권이다.
킨린코 호수에서 흘러내리는 맑고 깨끗한 물은 문화예술촌을 휘감아 돌며 작은 도랑과 실개천을 형성하고 이 실개천이 시가지까지 이어져 거리마다 집집마다 맑은 물이 흐르는 도랑을 어디서든 만날 수 있어 이곳은 가히 자연환경의 보존을 통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최상의 생태전원도시 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했다.
▲주민 意志로 결실 본 '문화예술마을 만들기'
그러나 유휴인이 주는 감동은 비단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1950년대부터 시작된 유후인의 ‘거대한 변화’ 과정에서 마을 주민들이 보여준 숨은 노력과 헌신을 이해하지 않고는 유후인의 진면목을 봤다고 하기 어렵다.
수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인근 벳부 온천 관광도시와 달리 가난한 소도읍에 불과했던 유후인은 1952년 중대한 변화의 계기를 맞게된다. 일본 중앙정부가 유후인 분지에 댐을 건설하는 계획을 발표, 마을은 위기를 맞는다. 오이타강을 분지의 남단으로 모아 거대한 댐을 만들고 이로 인해 생기는 호수 인근을 리조트관광지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정부가 엄청난 수준의 보상금을 제시했지만 유후인 농업인협회와 청년회를 중심으로 주민들의 격렬한 댐건설 반대운동이 시작됐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산천을 수몰시킬 수는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1년 이상 지속된 찬반 논란 끝에 결국 댐건설 계획은 무위로 돌아갔고, 이를 주도한 이와오 히데카즈(岩男顯一)씨 등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마을 가꾸기 운동’이 시작됐다. 물론 이 운동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주어진 자연환경을 최대한 그대로 유지한다는 데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같은 목표아래 독일 등 선진 농촌과 관광지를 둘러본 마을 대표들은 이곳을 건전한 휴양온천지로 개발하기로 했다. 당시만 해도 일본의 온천은 유곽과 어우러진 퇴폐적 이미지가 강했고, 난개발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누구나 편하게 찾아와 쉬고 갈 수 있는 온천관광지 조성’을 목표로 시작된 ‘마을 가꾸기 운동’이 계속되면서 유후인은 서서히 건전한 온천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당시 야쿠자 두목의 등극 축하연을 막기 위해 유후인의 모든 상인들이 철시했던 일화는 마을 주민들의 노력이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위기 돌파의 계기는 항상 유후인 주민들로부터 나왔다. ‘유후인의 자연을 지키는 모임’‘유후인의 장래를 생각하는 모임’등이 결성돼 황폐화 된 들판을 살리기 위해 ‘소 한 마리 목장 운동’을 펼치기도 했고 난개발 계획들을 차례차례 극복해 나갔다.
특히 1975년 발생한 대지진의 피해를 유후인음악제와 영화제, 미술관 유치운동 등으로 극복하였고 이때부터 시작된 음악제와 영화제는 일본내 가장 유명한 지역 문화예술축제로 자리매김 했다.
30여개의 미술관에서 1년 내내 미술전시회가 계속되는 것은 물론 4월 유후인 온천축제, 5월 유후인문화기록영화제, 7월 유후인음악제, 8월 유후인영화제, 11월 상공인축제, 12월 감주축제 등이 온천을 찾은 관광객들을 즐겁게 만들고 있다. 유후인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예술가들이 몰려와 집을 짓고 전시공간을 만드는 사례도 늘었다.
▲자치단체와 주민 노력의 산물
가장 큰 위기랄 수 있는 1980년대 ‘개발 붐’은 유후인 자치조례 제정을 통해 극복했다.
1988년 ‘리조트법’ 시행에 따라 유후인 같은 관광지에 대규모 리조트 맨션을 건설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자 전국에서 투기꾼이 몰려든 것이다. 땅값이 평당 10만엔을 호가하자 유후인 주민들은 1990년 “건평 1000평을 넘는 건물 신축시에는 인근 주민들의 동의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내용의 자치조례를 제정해 맞섰다.
그 결과 전국적인 개발 붐에도 불구하고 유후인에는 5층을 넘는 건물은 들어서지 못했고, 유후다케山의 스카이라인도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다.
유후인 주민들은 개발이 아닌 보존을 생존전략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아무리 눈 앞에 이익이 보이더라도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고향을 망가뜨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1950년대 유후인보다 잘 살던 마을 중 상당수가 개발 과정에서 도태됐지만, 우리의 자리를 잊지 않고 지켜낸 유후인은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유후인의 역사는 당장 손에 잡히는 물질이 아니라 고유의 정신과 전통, 자연환경을 지켜낸 것이 궁극적으로는 승리할 수 있다는 교훈을 일깨워주는 말이었다.
우리나라의 작은 읍(邑), 담양읍 정도에 해당하고 인구는 1만3000명에 불과하지만 유후인은 이같은 관광자원을 통해 연간 40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150억엔(약 1500억원)의 관광소득을 올리는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