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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날마다 좋은날혜광 스님 (담양 정토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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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0.23  10: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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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입구에 감나무 한그루가 있습니다. 금년에는 많은 감이 열리지 않았지만 감을 따서 상자에 담아서 저장고로 옮기면서 감사의 합장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과 바람과 물 등 모든 인연의 살려주는 은혜를 느껴봅니다.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걸으니 낙엽 밟는 소리가 정겹게 들려옵니다. 문득 미당 서정주 선생의 ‘추일미음(秋日微吟)’의 시가 떠오르게 됩니다.

‘울타릿가 감들은 떫은 물이 들었고 / 맨드라미 촉규(접시꽃)는 붉은 물이 들었다만

나는 이 가을날 무슨 물이 들었는고.’

미당 선생께서 던지시는 물음이 제 마음을 흔듭니다. ‘나는 어디에 머물러 있으며, 또 봄부터 여름 한철 살아오면서 어떤 물이 들었는가?’ 스스로 물어 보게 됩니다.

간밤에 가을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더니 도량에 낙엽이 쌓여 뒹굽니다. 추운 엄동설한의 계절을 보내려고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 놓은 모습이 마치 합장하며 인사를 하는 듯합니다. 오늘 도량을 찾을 손님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기 위해 이른 아침에 도량을 청소하며 하루를 맞이합니다.

얼마 전 대전에 용무가 있어서 이른 아침 고속도로를 이용 중에 휴게소에 들렸습니다. 그곳에서 생면부지의 중년 불자가 다가와 합장 인사를 하며 따뜻한 커피도 한잔 공양을 올리는 것입니다. 불자의 따뜻한 마음이 참 좋았습니다. 차를 다 마셔갈 무렵 제게 간단하게나마 자신을 위해 좋은 말씀을 부탁하기에 그 분의 선한 미소를 보면서 중국의 운문스님의 법문이 떠올라 전해 드렸었습니다.

「어느 날 운문스님은 대중들에게 물었습니다.

“지나간 일들에 대해서는 묻지 않겠다. 지금 이후의 삶에 대해서 말해 보거라.”

대중들이 아무 대답을 하지 않자, 스님께서 “날마다 좋은 날이니라.(日日是好日)”라고, 스스로 답을 하셨습니다.」

운문 스님의 간단한 법문을 간략히 풀어 설명하였습니다. “우리는 지난날의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습니까? ‘밝고, 활기차고, 즐겁고, 항상 성취의 기쁨이 넘쳐 났었나요?’ 아니면 ‘힘들고, 불편하고, 아프고, 고통스런 일이 많았나요?’ 대부분은 지우고 싶은 기억들이 자리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지우고 싶은 부정적 기억들은 살아가는 동안 자신에게 늘 장애로 등장하여 발목을 잡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래서 운문스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대가 지금까지 방황하며 살아오다 다행히 진리를 만나 진리에 귀의하여 신심을 내고 공덕을 닦으며, 또한 늘 법문을 듣고 비로소 집착을 버릴 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러니 이제 그대는 지금부터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 것인가?’라고 우리에게 엄중하게 묻습니다. 그리고 운문스님은 스스로 대답하십니다. “날마다 좋은 날이니라.” 듣기만 해도 가슴을 뛰게 하는 금구성언(金口聖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리를 만나 믿게 되었으니 세상사 집착할 일이 없음을 알았고 그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니, 매일 좋은 날이고, 어느 곳이든 좋은 장소이며, 무얼 하더라도 좋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봄날에 찾아 온 어미 제비는 세끼들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부지런히 먹을 것을 물어다가 날라서 키웁니다. 새끼들도 부지런히 받아먹고 자랍니다. 그렇게 사랑으로 기른 어미 제비는 세끼가 스스로 날 수 있게 되면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어미는 세끼들을 떠나보냅니다. 어미와 세끼 제비는 저 창공으로 비상을 하게 되는 순간 각자 스스로의 삶을 자유로이 펼쳐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이 아닙니까. 삶은 인연의 과정입니다. 이것을 무상(無常)이라고도 합니다. 무상은 허무가 아닙니다. 늘 새로움입니다. 우리들의 심장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쉬지 않습니다. 심장이 뛰는 것은 늘 새로움입니다. 과거에 집착하는 순간 새로움을 마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과거에 대한 어두운 집착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자기 앞에 대 긍정의 세계가 펼쳐지는 삶을 만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도 새로움이니 좋은 것이고, 매일 좋은 날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의 이 공양이 당신의 지난 날 모든 어두운 생각들을 떨쳐 버리는 인연이 되었으니 오늘은 마냥 좋은 날이기에 무한한 영광이 펼쳐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찬탄 드립니다.”

이와 같이 차공양의 답례로 간략히 말씀드리고 다시 출발해서 목적지에 도착하여 보니 여러 사람들이 당일 행사의 원만한 진행을 위해 맡은 바 소임을 묵묵히 해 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아름답고 빛나 보였습니다. 마치 으뜸 된 길을 걸어가는 선인들이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 있음을 분명히 믿게 되었습니다.

깊어 가는 가을날, ‘나는 지금 어디에 머물러 있으며, 어떤 마음을 물들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는 선인(善人)을 가을 옷을 입어가는 남산은 말없이 찬탄을 하는 듯합니다. “날마다 좋은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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