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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함께 읽는 부부에세이 24호양윤덕(시인, 수필가/담양시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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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4.14  10:3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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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그 한마디

희망이란 말은 바람 불어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풀 같은 것이다. 파란 풀 같은 희망의 말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것은 말할 필요 없이 자신의 선택이다. 하지만 자신이 아무리 희망을 믿고 노력해도 주위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그 믿음은 흔들릴 수 있다. 특히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있는 갈급한 상황일 때 배우자의 희망의 말 한마디는 모든 것을 좌우한다.

몇 해 전 지인의 남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내가 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너무 당황해서 아내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몇몇 친구들한테 연락해보았다고, 그러나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아 경험이 있는 나에게 조언을 구한다고 했다.

그의 아내와는 평소에 이런저런 가정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라서 그 남편이 아내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대충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아내에게 무조건 미안하다, 그리고 그동안 마음에 상처를 입게 해서 잘못했다, 라고 말하라고 했다. 그것이 나의 첫 말이었다.

그리고 설령 아내가 남편 때문에 병을 얻었다고 분노의 마음을 드러내도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아내가 다시 상처받지 않도록 절대 말조심하고, 항암치료를 편안하게 잘 받을 수 있도록 곁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말도 곁들였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암 환자가 된 당사자는 얼마나 두려움에 떨고 있겠느냐는 등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모습이 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는 조용히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고마워하며 전화를 끊었다.

사소한 병이 아닌 생사를 넘나드는 큰 병에 걸리게 되면 내가 아는 사람들 대부분은 배우자를 원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남편의 강압적인 태도에 억눌려 살아가는 아내의 경우가 그랬다. 그럴 경우 화를 달래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안해, 잘못했어. 당신 치료 잘 될 거야, 걱정 마” 이런 진정어린 말들이었다.

살아오면서 켜켜이 쌓인 어둠의 순간들이 불쑥불쑥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라 악몽처럼 괴롭히는 일들이 많다. 그건 스스로 극복이 잘 안 된다. 그때 배우자가 그 마음을 이해하고 ‘미안해!’라고 마음으로 한마디 해준다면 다시 용기를 갖고 살고자 하는 희망의 불씨를 살려낼 수 있다.

그 남편은 내가 알려준 대로 아내가 항암치료를 받는 내내 최선을 다해서 곁을 지키며 면역력이 좋은 음식에도 각별히 신경을 쓰며 보살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아내도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요즘은 의술이 워낙 좋아 암도 완치율이 높다. 다행히 그 아내도 치료를 잘 마치고 거의 완치해서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부가 살아가면서 아프지 않고 마지막까지 잘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려면 서로 마음에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고 살아야 할 텐데, 그게 가능할까, 생각해본다.

부부가 매순간 서로 마음에 드는 말, 마음에 드는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살 만큼 완벽한 존재가 아니니까. 서로의 마음을 완벽하게 들여다보는 투시경이 나오기 전까지는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그렇게 살 수밖에 없으리라.

인간은 노래를 하며 사는 동물이 아니라, 말을 하며 사는 동물이다. 그래서 항상 ‘말’이 문제다. 아니 ‘혀’가 문제다.‘뼈 없는 혀가 뼈를 녹인다.’는 말은 인간의 혀가 그만큼 무섭다는 뜻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기분 나쁜 일은 남에게 듣는 기분 나쁜 말이다. 그런데 하물며 부부 사이에서 그런 말이 오간다면 얼마나 슬프겠는가.

그런 순간이 오면 얼른 서로 달래야 한다. 마음으로부터 “미안해, 잘못했어.” 라고 한다면 그래도 마음이 좀 가벼워질 것이다. 그런 훈련이 필요하다. .

아내가 항암치료 받는 순간에도 상처를 입히는 말과 행동을 하는 배우자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건 도리가 아니고, 부부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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