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이 되면 봉산면 제월리 구미동은 끈끈하고 다정한 공동체가 된다. 제월리 사람들의 김장 담기는 ‘김장대작전’이라고 해야 정도로 일사분란하다. 
  밭에서 무, 배추를 뽑는 일에서부터 버무려 갈무리하기 까지 온 동네 사람들이 총 동원된다. 배추에 간하기, 씻기는 자연스럽게 순서가 정해진다. 그리고 각 가정에서는 자기의 차례에 맞게 양념을 만든다.
  이렇게 해서 준비가 끝나면 이제부터는 차례로 집집마다 방문하여 버무려 갈무리를 한다. 버무리기는 오전, 오후로 나뉘어 하기 때문에 하루에 두 집씩 한다. 스무 집이라도 열흘이면 끝난다.
  이웃 간에 왕래나 소통이 소원해져 가고 있는 것이 요즘 세태다. 그렇지만 제월리 구미동에는 아직도 품앗이, 두레, 공동체의 모습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필자는 석 달 전에 구미동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구미동 공동체에 참여하기 멋쩍었는데 이번 겨울 ‘김장대작전’을 통해 단숨에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버렸다. 물론 우리는 김장을 담지 않았다. 지난 여름 텃밭에 무, 갓, 쪽파를 심었다. 이것들 때문에 우리는 겨울 식량을 넉넉하게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것들을 심었지만 김장을 담글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랬었는데, 출타를 하고 오면 무가 동치미(싱건지)나 빠개지로 변해 있었고, 갓과 쪽파는 갓김치로 변해 있었다. 우리의 동의도 없이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해 놓은 것이다. 집집마다 김장을 가져다  주어 우리 부부는 결혼 이후 최고의 겨울을 지내게 되었다.
  김치냉장고가 넘쳐 항아리를 하나 사다 땅에 묻고 마을 사람들이 준 김치를 채워 넣었다. 내년 여름이 되면 꺼내 먹을 생각이다. 그 생각만 해도 벌써 군침이 돈다.
  뭐라고 감사를 표해야 할지…… 아내는 그런 일에 익숙하지 못해 품앗이를 할 처지도 못 된다. 그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맛있게 먹어주는 것 말고 방법이 없다.  
  제월리 사람들의 김장대작전은 10년이 훨씬 넘었다. 우리도 내년에는 그 일에 동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