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내에서는 최초로 추곡(건벼)수매가 시작된 지난 4일 무정농협 창고 앞에는 1년 내내 자식 키우듯 애지중지 공을 들인 볏가마니를 경운기에 실은 농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얼굴에는 수확의 기쁨보다는 시름만이 깊어 보였다.(사진) 마른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연방 줄담배를 피워댄다.
농민 A모씨는 "자나깨나 논에서 살다시피 해 이제야 수확을 했는데 왜 기쁘지 않겠는가…. 그런데 쥐꼬리만한 돈을 손에 쥘 생각을 하니 논을 갈아엎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며 한숨을 토해냈다.
수매장을 방문한 농민들은 대부분 평생을 한 곳에서 농사지으며 살아온 촌로들이다.
벼 검사원에게 한해 지은 농사를 심사 받듯 내보이고 한 포대 한 포대 처리되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모습 속에는 수확의 기쁨보다는 근심이 더욱 크게 투영된다.
동진 1호를 수매한 정모씨(무정 봉안)는 "농사짓기가 힘들어요. 정부에서 양을 정해놓기 때문에 농민들이 마음대로 내놓을 수만은 없다"며 "머지않아 밀가루를 수입하듯 쌀도 전량 수입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이다"고 우려를 나타낸다.
할머니와 함께 농사를 짓고 있는 전모 할아버지(평지리) 또한 갈수록 힘들다는 것으로 말문을 연다.
"인력은 모자라는데 인건비와 자재비는 늘어만 가고 걱정이 사라질 날이 없습니다. 지금은 땅을 놀리지는 않지만 앞으로 1∼2년 정도 후면 아마도 힘에 부쳐 농사 일 하기도 힘들겠지요. 지금은 50∼70대의 우리가 농촌을 지키고 있지만, 세대가 교체되면 그 어느 누가 쌀 농사를 지을지…."
전 할아버지는 또 "장사는 약간의 수를 쓸 수도 있지만 농사는 손이 가지 않으면 곧바로 태가 나기 때문에 쌀 농사만큼 정직한 것이 없다. 농민들이 흘린 일년 동안의 피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쌀이다"라고 덧붙인다.
한 해 농사를 수확하고도 우울한 마음을 그나마 달래주는 것은 검사원이 매겨준 등급. 올해는 햇볕이 좋고 태풍피해 또한 적은 탓에 작황이 좋기 때문에 특등과 1등품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난해보다 4% 하락한 수매가는 여전히 마음 한구석을 어둡게 하고 있다.
'농심(農心)이 서럽다.'라고 표현 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에 비해 벼 생산량은 늘어나는 반면 정부의 추곡 수매량이 줄어든데다 수매가격마저 인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72년 폐지됐다가 88년에 부활돼 농민들에게는 그나마 '버팀목(?)' 역할을 해왔던 추곡수매 국회동의제에 대해 정부가 국회동의제를 폐지하고 추곡수매제와 공공비축제를 병행하는 방향의 양곡관리법을 추진하고 있어 이래저래 농심은 멍들고 있다.
수매현장에서 만난 농민들은 하나같이 태어나서 배운 기술이 농사짓는 것 밖에 없는데 젊은 사람도 놀고 있는 판에 어디 가서 무얼 하겠는가 라고 반문한다.
조영삼 농산물품질관리원은 "일년 농사를 잘 짓고 마지막 판정을 받는 수매에서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조제 및 수분조절(15%이하)등 철저한 수매 준비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