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평생을 살아오면서 흙처럼 진실한 것은 없어. 내가 땀 흘리고 연구하고 사랑한 만큼 보답을 해주거든”
창평 해곡리에서 수도작과 시설원예를 하는 소농이지만 젊은이 못지 않는 농업에 대한 열정으로 부농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조갑용(70)·류현혜(61) 노부부의 농업에 대한 마인드.
장대비가 쏟아져 모처럼 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마을 모정에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는 조씨 할아버지 부부에게서 근세기 농업의 산 역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몇 마지기 전답을 일구며 사방공사 현장에서 감독을 하고 비가 오면 밤새 새끼를 꼬아 내다 팔아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가정을 이끌어가던 조씨가 농사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중학교를 졸업하고도 가정형편으로 고교진학을 포기한 채 산업현장에 뛰어든 장녀의 가슴 시린 내용이 담긴 일기장을 펼쳐본 것이 계기가 됐다.
철부지 딸의 하소연 같은 부모에 대한 원망이 조씨의 마음을 자극시켜 84년 딸기 농사에 과감하게 뛰어들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변변한 농자재가 없어 시설원예를 한다는 것은 젊은이들도 쉽사리 접근하기 힘든데 50세의 농부가 딸기를 재배한다고 하니 주위 사람들의 걱정이 산을 이루듯 했다는 것.
타고난 성실함을 바탕으로 모르는 것은 농촌지도소와 농협 직원에게 매달리다 시피해서 알아내고 이를 농사에 바로 접목시켜나간 결과가 첫해 120만원으로 변신해 손에 쥐어졌다.
이 돈으로 큰딸의 소원이던 고교진학을 시키고 나머지는 딸기농사에 재투자했다. 요즘에는 저변화 돼있는 관수를 하기 위해 그 당시에는 8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양수기를 구입, 냇가에서 용수를 공급하는 도전정신에 주위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조씨가 이렇게 과감히 농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부인 류씨의 꼼꼼함과 성실함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조씨는 농사에 전념하고 부인 류씨는 선진 농업을 배우기 위해 두꺼운 노트에 배운 것을 세밀하게 정리했다.
류씨는 선진지 견학을 하고 되돌아오는 관광버스 안에서 동승한 이들이 음주가무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배운 것을 잊지 않으려고 메모해놓은 것을 되새겨 보고 도착하기가 무섭게 이를 실천에 옮겨갔다.
조씨 부부가 애정을 갖고 일하는 하우스 한켠에 걸린 달력은 달력이기이전에 영농일지이다. 꼼꼼히 적어놓은 내용들로 인해 달력 숫자가 안보일 정도로 기록에 의한 영농을 실천하고 있다.
조씨 부부가 성공한 농업인으로 자리잡은 것은 남다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딸기 모종 값을 아끼기 위해 자신이 직접 런너를 길러 모종을 육성하거나 육묘상들이 상품성이 없어 버리고 간 자투리 모종을 애지중지 건강하게 길러 포트에 이식하고 이를 본 포장에 정식한 후에 밤낮으로 재배한 노력들은 어김없이 창평 최고의 딸기로 답해왔다. 여기에다 IMF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고 귀농한 막내아들의 형설지공이 더해졌다. 원예잡지를 탐독한 후에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 전조농법.
전기세가 아까워 TV 시청도 자제하는 것이 미덕인 농촌에 집도 아닌 딸기 밭에 전기시설을 갖추고 밤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힌 것을 보고 “힘들게 농사지어 한전에다 다 갖다 줄 것이냐”는 주위의 조소 섞인 비아냥을 애써 외면하고 농사에 몰두한 결과 1000만원이라는 거금을 수확하는 개가를 올렸다.
경비를 줄이기 위해 지난해 큰돈을 벌게 해준 비닐을 한해 더 사용키로 하고 수막재배에 필요한 용수를 확보코자 관정을 시추했다. 그러나 인근 농가에서 시추한 관정으로 물이 딸려가 관정의 기능을 상실, 눈물을 머금고 폐공을 시키는 어려움이 더해진 가운데도 ‘사람은 변심하지만 땅은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지극 정성을 더해 얻은 수확이 4000여만원이다.
이같은 조씨의 성공 농업에 냉소적이던 주위의 반응이 변하기 시작했다. 나이든 노인들이 짓는 농사가 대수이겠냐? 던 시선들이 관심으로 변하면서 조씨의 하우스는 산교육장으로 활용됐다. 하나라도 배우려는 젊은 농군들에게 자신의 농사 비법을 아낌없이 전수했다.
딸기 생육에 필요한 깻묵, 쌀겨, 흑설탕과 복합비료를 한데 섞어 발효시킨 영양제를 만드는 방법은 물론이고 아미노산이 다량 함유된 조기·황실이·홍어 등 먹고 난 생선찌꺼기와 상품성이 없는 딸기들도 버리지 않고 발효시켜 이를 흙에 되돌려 주는 노력들도 함께 전파해 나갔다.
조씨는 요즘 시간만 나면 지난해 군에서 지원해준 대나무 숯을 활용한 기능성 필름 자랑에 여념이 없다. 20년 동안 농사를 지어오면서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딸기를 올해 가장 많이 수확했고 그것들이 조씨의 통장에 가득히 쌓여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를 정도로 그 효과를 톡톡히 보았기 때문.
“이제는 연세도 많으니 편안하게 쉴 때가 됐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세끼 굶지 않고 남에게 손 벌리지 않게해준 농사를 한순간에 그만 둘수 없다”는 조씨는 정말 타고난 농사꾼임에 틀림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