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군인이었던 필자는 항상 병법을 공부하고 온전한 승리를 얻기 위한 방법을 추구해왔다. 지금의 경영인이나 정치인 모두 병가(兵家)의 입장에서 고전(古典)을 읽고 그 속에서 지혜를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고전을 읽다보면 왜 위인들이 책을 벗 삼아 살면서 그 속에서 지혜를 구하고 특히 자연의 위대함에 순응하고 겸손한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하늘은 하늘을 두려하고 그 앞에 겸손한자를 영웅으로 만들어 주다보니 영웅은 하늘이 내린다고 하였을까. 손자도 그의 병법 첫 부분에서 언급한 것이 천지에 관한 것이다.

始計편에 보면 天者는 陰陽 寒暑 時制也오 地者는 遠近 險易 廣狹 死生也오라. 즉 天이란 陰陽이라는 초자연적이고 우연적인 요소와 추위 더위 등 기후라는 자연적 요소와 천기(天機) 전기(戰機)라는 사회적 인간적 요소를 말한다. 地란 거리의 말고 가까움, 지세의 험하고 평탄함, 지형의 넓고 좁음, 동식물의 살 수 있는 지 없는지 등 지리적 조건을 말한다.
유능한 장수들은 이러한 천지의 요소를 잘 이용하였는데 지금까지의 그들이 치른 큰 전쟁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6. 25 전쟁에서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한없이 밀리던 유엔군은 낙동강 전선에서 겨우 전열을 가다듬고 인천상륙작전이라는 대 우회 포위공격으로 전세 역전의 기회를 잡았다. 당시 이 작전에 대해 맥아더 사령관을 제외하고는 대단히 회의적이었다.

인천은 조수 간만의 차이가 너무 커서 상륙작전에 어려움이 많고 항구가 좁고 수심이 낮아 전투함정이 충분하게 접안할 수도 없고 전투를 지원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상륙지역이 협소하고 절벽이 많아 정상적인 상륙방법으로는 작전 수행이 어려웠다. 그러나 맥아더는 천지의 약점은 천기로 해결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결국 맥아더의 믿음은 전세를 역전시키고 풍전등화의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냈다.

고려의 강감찬 장군은 귀주대첩에서 거란 10만 대군을 격파했다. 이때 살아 돌아간 거란병사는 수천 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 전투에서 강감찬은 귀주의 특이한 기상인 풍우의 시기와 방향을 잘 이용했다.

귀주에서는 활강형 한랭전선과 온난전선이 만나서 스콜 기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강감찬은 알았던 것이다. 당시 귀주 벌판에서 일전을 치르는 고려군과 거란군 진영에서 갑자기 거란군을 향해 비바람이 몰아쳤다. 앞을 보지 못하는 거란군, 비바람을 타고 작렬하는 고려군의 화살, 그 사이로 고려군의 기마부대가 거란군을 유린했다.

다시 지난번 얘기했던 명량대첩으로 돌아와 보자.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은 12척의 배를 가지고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했다. “장부가 세상에 나와 쓰일진대 목숨을 다해 충성할 것이요, 만약 쓰이지 않는다면 물러나 밭가는 농부가 되어도 족하니라.” 백의종군에 모친의 죽음까지 겹쳐 정신적으로 힘들었겠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수군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적은 수의 배로 많은 왜적선과 싸우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군사적 요충지인 좁은 통로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과 그곳에서 상대적 전투력의 우위를 이용해서 싸워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곳이 어디인가? 이순신은 그 답을 명량해협의 거센 물살에서 찾았다. 동남쪽으로 흐르던 조류가 서서히 멈추더니 반대로 흐를 때는 물 흐르는 소리가 꼭 바다가 우는 것과 같다고 하여 울돌목이라 불릴 정도로 조류가 강하게 흘렀다.

그래서 이순신은 천혜의 길목인 명량해협을 결전의 장소로 선택한다. 명량은 왜군이 남해에서 서해로 올라가 한강을 거슬러 서울을 공격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이지만 넓은 바다를 흐르던 물길이 좁은 해협으로 몰리면서 물살이 거세지는 곳인 것이다.
특히 사리(大潮) 때에는 물살의 빠르기가 9~11노트나 돼 어떤 배라도 감히 물살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었다. “바로 이것이다.” 이순신은 울돌목의 썰물과 밀물 그리고 지형을 이용하기로 결심한다.

명량해협은 그 폭이 좁아 실제로 한 번에 맞닿아 싸울 수 있는 배는 5~6척에 지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왜선들도 한꺼번에 공격하기가 어려워 12척의 조선수군도 당당히 맞설 수 있었던 것이다.
천지의 요소는 모두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것이다. 능력 있는 장수는 이러한 천지의 이치에 겸손하고 이를 이용할 줄 알지만 무능한 장수란 자신의 능력만을 믿고 오만한 태도로 전쟁에 임한다.

백성의 마음도 천지의 이치처럼 정치인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죽하면 순자는 “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배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엎기도 한다.”(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라고 했을까. 현정을 베푼 조선의 정조대왕은 많은 책을 읽었다고 전한다. 그 중에서 정조대왕이 항상 명심하였던 부분이 바로 순자의 저 말씀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