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동안 인구에 회자됐던 말들을 통해서 이 세상 돌아가는 것과 인간의 명암과 굴곡을 찬찬히 읽어 본다.
○ “순신불사의 어구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에 전율 같은 감동을 느낀다.” 정계복귀설이 거론되고 있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한 대학 특강에서 했던 말이다. 이 전 총재는 “이순신은 선조에게 올린 장계에서 ‘上有十二舜臣不死’(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고 이순신이 죽지 않았다)고 했다”고 소개한 뒤 이 말을 덧붙였다. 언론은 ‘회창불사’라는 제목을 붙이면서 이 발언을 정계복귀 의사가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은 “이회창은 원균보다도 못한 인물이다”라고 비판했다.
○ “한나라당은 철새 도래지가 아니다.” 전여옥 한나라당 최고의원이 “한나라당에 문을 두드리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했던 말이다.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정치공작 발언이라는 논란에 휩싸이면서 ‘공작녀’라는 호칭을 부여 받기도 했다. 한편 열린우리당 서영교 부대변인은 “철새도 부패한 곳에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 “10년을 주기로 박정희 신드롬에 기대서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이 있다. 퇴행적 성형수술이다.” 민병두 열린우리당 의원이 검은 선글라스를 자주 쓰는 등 박정희 이미지를 활용하려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겨냥해 날린 말 화살이다. 1997년 대선 당시에는 이인제 전 의원이 박정희 닮기를 시도한 바 있다.
○ “대북제재를 옷을 벗는 것에 비유하자면 한국은 이미 핵실험 전부터 이미 팬티만 입고 있었다. 그런 우리한테 팬티까지 벗으라면 이런 부당한 일이 어디 있느냐.”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퇴임 기자회견에서 미국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하며 작심한 듯 했던 말이다. 북한에 대한 쌀과 비료 지원까지 중단한 마당에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까지 중단하라고 압박했던 사실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 “물은 결코 다투지 않고 혼자 가는 일이 없다. 물은 다 합쳐져야 힘이 강해진다.” 이재정 신임 통일부 장관이 취임사에서 한 말이다.
○ “탱고는 둘이 추는 것이다.” 송민순 신임 외교부 장관이 청와대 외교안보실장이던 지난 9월 했던 말이다. 미국과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혀졌다. 이번에는 장관에 취임한 뒤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탱고를 추기 위해 의상을 차려입고 나왔다. 장관 임기 중에 적어도 함께 춤을 추다가 어느 한쪽이 등을 돌리고 돌아서지 않는 단계까지는 만들고 싶다.”
○ “미국이 쌀을 건드리면 협상을 깨는 것도 불사해야 한다.” 한미FTA 농업분과 대표인 배종하 농림부 국제농업국장이 한 말이다. 그러나 자칫 쌀만 안 건드리면 다른 것은 다 내줄 수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 “피노체트의 죽음은 우리에게서 심판과 처벌의 기회를 앗아갔다. 나는 피노체트가 심판받지 않은 것에 대해 애도를 표한다.” 남미 군사독재의 상징 피노체트 전 칠레 대통령이 단죄를 받지 않은 채 사망하자 나왔던 말이다. 최소 3만명을 학살한 혐의를 받고 있는 피노체트를 기소했던 비야그라 검사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 “어떤 나라도 다른 나라 위에 군림함으로써 안전을 지킬 수는 없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퇴임을 앞둔 고별 연설을 통해 작심한 듯 미국을 겨냥해서 한 말이다. 그는 “강대국의 책임은 봉사하는 것이지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도 했다. 현직에 있을 때는 하기 어려운 말이었을 것이다.
○ “좌파든 우파든 세월의 흐름에 따라 모든 이념은 결국 중도를 지향하게 된다.” 룰라 브라질 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는 “흰 머리카락이 많아지고 책임감이 늘어갈수록 모든 것들이 변화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재선 대통령의 여유가 이런 말을 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