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경호처장기 3위 "新星에서 王座로"
사격부원 모두 優勝 1순위…올림픽까지 '정조준'

회색 사각의 무인경비시스템이 빨갛고 좁쌀만 한 불빛을 반짝거리며 이방인을 경계한다. 이곳은 담양고등학교 공기소총 사격장. 곳곳에 경첩이 달려 있는 철제문은 육중하기만 한데 안에선 기척조차 없다.

민방위 훈련 사이렌 소리에 깜짝 놀라 눈만 껌벅이고 있는데 영권이 녀석이 멋쩍은 듯 조용히 문을 연다. 그래도 몇 번 봤다고 눈이라도 마주치더니 이내 고양이 본 생쥐마냥 꽁지를 빼버렸다.

눈으로 말한다

팽팽한 고요함. 표적지를 비춘 가녀린 불빛은 애처롭기만 하다.

이곳의 정적은 의기로 투합한 어린 사자들의 서늘함이 배어 있는 곳. 공기마저 날카롭다. 승리에 목마른 녀석들은 땀 냄새 흥건한 언덕 뒤에 숨어 조준경에 눈을 맞춘다.

이내 주섬주섬 사격복을 챙기며 사람 왔다고 움직이는 시늉이 어쩔 수 없는 고등학생이다. 아직은 앳된 네 명의 사격선수들. 그래도 이들은 ‘사격의 메카 潭陽’을 짊어진 어린 사자들이다. 그런데 이 어린 사자 녀석들, 언제나 말이 없다.

‘고요함’은 그들의 친구요 ‘말 없음’은 그들의 진리이거늘, 웃음은 사치요 방자함이다. 기어이 고1 녀석들의 진지함에 기가 눌려 버렸다. 사자들에게 언어란 세상을 향한 외침뿐, 너무 많은 걸 기대했어나 보다.

그래도 사진 찍는다고 맘에 드는 옷으로 입으라 했더니 입던 옷 팽개치고 산뜻한 남색 니트로 바꿔 입는다. 영재(1학년, 읍 백동 주공아파트, 父 김진권)는 그렇게 준비됐고 영권(1학년, 용 용연리 父 서철호)이에게 말을 건넸다.

“넌 이번에 어땠어?”라는 질문에 짤막하게 “망쳤어요” 한 마디. “괜찮아 다음에 하면 되지”
용운이(2학년, 곡성 석곡, 父 김삼수)는 형이라고 어느새 저쪽에서 다 챙기고 훈련 채비를 마쳤다. 뻣뻣한 가죽 사격복 사이로 몸을 부벼 넣고 있는 재복이(1학년, 금성, 父 최윤기)에게 아는 채 좀 해라고 했더니 역시나 단답형 “예”

혼자 물어보고 혼자 대답하고 슬슬 지쳐갈 때 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했다. “부모님에게 키워주셔서 고맙다고 하고 꿈은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라고 하면 되지”

잠시 후 “아니요 세계를 대표하는 선수죠”

영재였다. ‘울지 않는 사자’에겐 한 마디 말도 굉음이요 자신의 숨소리도 거짓이었거늘 영재의 한 마디 대답은 혜안을 주는 깨우침의 소리였다. ‘맞아! 이 녀석들은 세계가 무대다’

우승에 버릇 들여라

적도 없고 상대도 없다. 나와의 싸움뿐이다. 흐릿해지고 헛생각 한 번이면 모든 게 끝난다.

시합은 연습같이 연습은 시합같이, 숨을 가다듬고 몸을 멈추고 방아쇠를 당겼다. 0.53g의 납탄은 10m를 날아 45mm 표적에 꽂혔다. ‘챙’

한 중앙 5mm, 경쾌하게 뚫린 표적지는 둥그렇게 자국을 남겼고 그렇게 또 한 발 쐈다.

한 발 한 발 쌓인 납탄들은 그대로 돌이 되어 ‘금자탑’을 쌓고 있으니 현재 1학년 선수들 담양中 시절에도 내로라하는 전국의 체육中을 상대로 이름을 날렸다.

지난해 5월 2일 충북 청원사격장, 제23회 사격협회장기 대회가 열리고 있는 때. 당시 中3이던 김영재, 서영권, 최재복은 김형민(당시 2학년)과 함께 남자중등부 단체전 2위를 석권했고 김영재는 개인전 1위를 거머줬다.

24일 후, 제36회 전국소년체전 사격대회 포항사격장. 회장기에서 2위에 그친 아쉬움을 달래기라도 하듯 단체 1위, 개인 1위를 모두 가져왔다.

이로써 담양中은 역사상 두 번째로 전국소년체전 우승트로피를 가져왔다. 당시 코치를 맡고 있던 허은 씨가 1992년 중학시절 석권한 이래 15년 만의 기쁨이었다. 이때도 김영재는 589점으로 개인전 1위를 유지했다.

이처럼 담양高 사격부는 중학시절부터 철저히 ‘우승하는 버릇’을 들이고 있다. 이를 증명해 보이듯 지난 4월 제47회 도민체전에서는 사격 27연패의 위업을 달성하며 전설을 이어 나갔다. 도민체전 선수로 참가한 김용운과 김영재는 단체전 1위는 물론 김영재가 개인전에서 여전히 1위를 수성한 것이다.

난공불락의 요새를 지켜내고 있는 김영재는 이번에도 감독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지난 25일 제4회 대통령경호처장기 전국사격대회 개인 3위(공기소총 남고부, 689.2점)에 올라선 것이다. 못내 아쉬운 결과이나 1위와는 2.6점 밖에 차이나지 않는데다 아직 1학년이니 기회는 많다. 남자 공기소총 세계기록은 703.1점이고 한국기록은 702.7점이니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사격의 聖地

담양高 사격부 문경한 감독. 도민체전 27연패의 산증인이자 기록을 만들어가는 ‘마법사’이기도 하다. ‘말 없는 사자들의 조련사’이기도 한 그는 어쩌면 ‘현재진행형의 전설(傳說)’과도 같다. 사람 좋은 모습으로 항상 푸근한 그는 역시나 제자들처럼 말 없기도 마찬가지.

학교체육의 상황에 대해 허심탄회한 담화를 기대했으나 그저 제자들 칭찬이면 족하단다.

“영재는 근성이 있어서 장래가 촉망됩니다. 집중력이 뛰어나죠. 사격선수로서의 기질이 다분해 앞으로 대성할 겁니다” 우선 이번 경호처장기 대회에서 입상한 영재 칭찬이다.

“용운이는 할 만큼 해내는 수준이라 칭찬할수록 더 잘하는 스타일이고 영권는 아직 자신의 그릇을 덜 채웠습니다. 차분하게 성장하고 있으니 걱정없는 상태죠, 재복이는 워낙 듬직한 녀석이라 두 말도 않고 믿고 있어요. 우리 선수 모두 다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짧고 굵직한 칭찬에다 선수평(評)이다. 따뜻한 애착이 그대로 녹아 있는 그의 목소리는 못내 다음 말을 이었다.

“우리 애들은 한체대니 경희대니 대학 진학이 문제가 아닙니다. 현재는 2년 후 아시안 게임을 준비하고 있어요, 물론 궁극적으론 올림픽을 내다보고 있죠”

그 때가 기다려진다. 그 때는 담양사람 모두들 TV 앞에 모여 앉아 ‘우리 동네 동생이자 아들들’을 응원하고 있을 게다. /서영준 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