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학교 급식 식단표는 봤어?”
“아니, 못 봤는데. 왜?”
“한번 보라고. 학교 급식 식단표에 쇠고기가 들어가는 요리가 적지 않게 포함돼 있더군. ‘값 싸고 질 좋은’ 미국산 쇠고기가 쏟아져 들어오면 당장 급식 시장부터 점령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갑자기 잠이 안 오더라고.”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중학교 2학년 아들과 함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학교 급식 식단표를 찾아봤다. ‘목동중학교 5월 식단표’. 급식회사 Y사에서 작성한 것으로 표시돼 있는 이 문서에 따르면, 공휴일, 중간고사, 어린이날, 석가탄신일, 개교기념일 등을 제외하고 급식이 제공되는 날은 모두 15일이었다.

육개장, 쇠고기무국 절반 이상 나와

육개장, 설렁탕, 불낙볶음, 쇠고기무국, 모듬장조림, 함박스테이크…. 쇠고기가 주요 재료로 쓰이는 메뉴만 찾아보니, 6가지로 집계됐다. 이밖에 미역국, 미트칠리소스, 카레라이스, 군만두 등의 메뉴도 눈에 띄었다. 이들 메뉴에도 쇠고기가 부분적으로 들어간다고 봐야 할 것이다.
‘쇠고기’라는 단어가 직접 들어가진 않았지만, 육개장(개장국을 꺼리는 사람들이 쇠고기로 개장국처럼 맵게 끓이는 국)과 설렁탕(소의 여러 부위를 함께 넣고 푹 끓인 국이나 그 국에 밥을 만 음식)도 엄연한 쇠고기 관련 음식이다.

식사 때마다 거의 빼놓지 않고 나오는 국의 경우에도 사실은 쇠고기 육수를 쓰는 경우가 많다. 꼼꼼히 따져 보면, 음식을 조리할 때 많이 쓰는 조미료에도 필수적으로 쇠고기가 들어간다. 그러고 보면 국내 식탁에서 쇠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요리를 찾는다는 게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다음주 월요일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초등학생 자녀를 둔 본사 직원 이은정(경영지원팀) 씨에게 초등학교 급식 식단표 입수와 조사를 부탁했다. 그녀는 무작위로 서울시내 24개 초등학교를 선정했고, 각 학교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급식 식단표를 입수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동대문의 답십리초등학교, 서대문의 독립문초등학교, 도봉의 수유초등학교와 신방학초등학교, 종로와 중구의 보광초등학교와 남산초등학교 등 지역을 골고루 안배하는 데까지 신경을 쓴 모양이었다.

기자는 넘겨받은 식단표 중에서 쇠고기 관련 메뉴가 얼마나 되는지 골라내고 통계를 내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이 드러났다.
첫째, 쇠고기 관련 메뉴가 없는 학교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떡갈비찜과 쇠고기무국 등 2개의 음식이 메뉴에 포함된 백산초등학교가 상대적으로 적은 경우에 속했다. 하지만 자장밥, 찐만두, 하이라이스 등에도 소고기가 부분적으로 들어간다는 점에서 쇠고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둘째, 쇠고기 관련 메뉴로는 육개장(17개 학교에서 제공), 쇠고기무국(14), 쇠고기미역국(11), 소불고기(8), 갈비찜(7), 장조림(4) 등이 가장 자주 등장했다. 이밖에도 다양한 쇠고기 메뉴가 있었다. 쇠고기야채죽, 쇠고기콩나물곡, 쇠고기버섯국, 쇠고기당면국, 쇠고기덮밥, 쇠고기볶음밥 등이 대표적인 경우에 속한다,
여기까지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학교 급식에 미국산 쇠고기가 아니라 국내산 쇠고기 즉 한우를 식재료로 사용만 한다면 광우병 위험성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핵심적인 논점은 광우병 위험성을 안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가 과연 국내 학교 급식에 사용될 가능성이 있느냐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에 대한 입장은 뒤에서 좀더 자세히 따져 보기로 하자. 그런데 분명한 것은 미국산 쇠고기의 학교 급식 유입 가능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정파와 계층의 구분이 없을 정도다.

“식당은 물론, 학교, 군, 급식소 등에서도 사용하는 쇠고기의 원산지를 반드시 표기토록 하겠습니다. 광우병이 발생하면 그 나라의 쇠고기는 가정이든, 식당이든, 집단 급식이든 간에 절대 식탁에 오르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지난 7일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극구 강조했던 말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주장해 왔던 한나라당 대표조차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학교, 병원, 군대 등 단체 급식 취약

“학교, 병원, 군대 등 단체 급식은 소비자가 선택권이 없다. 광우병 위험이 가장 심각한 현장이 학교, 병원, 군대가 되는 것이다.”
배상태 가톨릭농민회 회장의 주장이다. 배 회장만 나선 것이 아니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과 ‘학교급식법 개정과 조례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과 ‘건강권 보장과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희망연대’ 회원들도 지난 7일 미국산 쇠고기를 학교, 군대 등 단체 급식에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급식 가격을 맞추기 위해 값싼 식재료가 공급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단체 급식을 하는 사람들이 미국산 쇠고기의 1차적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학교 급식에는 한우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겠다”고 언급했지만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인 것 같다. 자녀들의 건강에 민감한 학부모에 이어서 대구와 전주 등 지역시민단체, 대학생들도 학교 급식에 미국산 쇠고기를 절대 사용하지 말 것을 정부에 엄중하게 요구했다.

“엄마 말 잘 들어. 오늘부터는 절대로 학교 급식에서 소고기 나오면 먹으면 안 돼.”
“장조림, 소불고기, 소고기국. 하여간 무슨 반찬이건 소고기는 안 돼.”
“엄마 말 잘 듣고 있지? 그 소고기가 이번에 들어온 미국산 소고기일지도 모른단 말이야!! 절대로 소고기 반찬은 안 돼!! 햄버거도 안 돼!!”
“아…!! 아니다!!! 이제부턴 엄마가 아예 도시락을 싸줄게. 넌 급식 먹지 말고 도시락 먹어.”
“친구들 급식 먹는다고 절대로 따라 먹으면 안 돼!! 알았지!!”

필명 ‘강풀’로 유명한 만화가 강도영 씨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카툰 ‘미친 소 릴레이’가 네티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앞에서 소개한 발언은 이 만화의 도입부에 연이어 등장하는 다섯 개의 말풍선에 담겨 있던 대사들. 초등학생 아들에게 엄마가 신신당부하면서 했던 말들이다. 만화가까지 가세한 것이다.

광우병 위험성을 안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가 과연 국내 학교 급식에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가? 이와 관련해 현재까지는 두 가지 입장과 여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10대들은 자신들이 단체 급식으로 인해 광우병 위험에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실제 단체 급식에 미국산 쇠고기가 쓰일 확률은 제로에 가까운 것으로 밝혀졌다”(한국일보 5월 8일자)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학교와 군대는 미국산 쇠고기를 피해갈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시사인 5월 10일자)는 견해도 존재한다.

첫 번째 촛불 시위가 있던 날이었다. 한밤중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지냈던 대학 동창이었다. 중학생 자녀를 두고 있다는 그와의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한미 쇠고기 협상 논란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대화가 끝날 무렵, 그가 깊은 한숨을 몰아쉬더니 이런 질문을 던졌다.

공교롭게도 양측이 제시하는 근거는 ‘가격’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하지만 똑같이 가격을 내세우면서도 결론만은 정반대 방향으로 평행선을 달린다. 먼저 미국산 쇠고기가 급식에 사용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보는 언론의 주장을 들어보면 이렇다.

“(미국산 쇠고기가) 가격경쟁력 면에서 호주산은 물론 국내산 육우에도 크게 못 미치기 때문이다…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된다 해도 단가 자체가 호주산이나 국내산 육우에 비해 훨씬 비싸 학교나 일반 기업의 급식에 사용될 것이라는 가정은 현실성이 전혀 없다…가격 차이는 육우를 기르는 방식 차이에서 온다. 호주산은 방목 상태서 풀을 먹여 키우는 목초 사육을 하고 미국산은 곡물을 먹이는 곡물사육을 한다…단체습식의 경우 굳이 논란 많고 값 비싼 미국산을 사용할 이유는 없다.” (한국일보 5월 8일자)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2007년-기자주) 홍문표 한나라당 의원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서울 지역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수입산 쇠고기를 사용한 비율이 86%다. 특히 학교 직영 급식은 29%만이 수입산을 사용한 반면, 외부 업체가 들어오는 위탁 급식에서는 94%가 수입산을 썼다. 이윤을 추구하는 위탁 급식업체가 값싼 수입산을 선호하리라는 사실을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건 이명박 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시사인 5월 8일자)

이와 관련해 확인하고 넘어갈 것이 있다.
정말 단체 급식에 미국산 쇠고기가 쓰일 확률은 제로에 가까울까? 각종 자료를 보면, 그렇게 단언한 일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학교 급식에도 미국산 쇠고기가 사용된 적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음은 지난해 10월 16일자 세계일보에 실렸던 기사의 전문이다.

미국산 쇠고기 제로? 이 기사 봐라

최근 광우병 논란이 격화되고 있는 미국산 소고기가 올 들어 학교급식에 최소 3t 이상 사용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회 농해수위 소속 한나라당 홍문표 의원(사진)은 15일 “올 들어 지난 8월 말까지 일선 학교에서 사용된 것으로 확인된 급식용 미국산 소고기가 3105㎏에 달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이날 홍 의원에게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서울, 경기, 인천, 울산, 대전, 광주, 대구, 부산 등 8개 광역권 지역 소재 4576개 학교 가운데 7개 학교에서 미국산 소고기를 급식용으로 이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학교는 인천 D고교(1863㎏)를 비롯해 수원 Y고교(641㎏), 수원 Y여고(460㎏), 일산 I고교(120㎏), 울산 S초교(10㎏), 부천 B고교(7㎏), 부천 S고교(4㎏) 등이었으며, 특히 인천 D고교는 급식용으로 전량 미국산 소고기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학교급식에 사용된 소고기는 총 321만488㎏으로, 이 가운데 국내산이 241만9244㎏(75.4%)으로 가장 많았고 호주산(76만2071㎏, 23.7%), 미국산(3105㎏, 0.1㎏), 기타(2만6068㎏, 0.8%)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초등학교의 경우 전체 급식용 소고기 가운데 97.8%를 국내산으로 사용했으나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각각 국내산 이용 비율이 71.5%, 49.5%에 그쳤다.

홍 의원은 “다른 지역의 학교를 포함하면 실제 사용량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학교급식에 광우병 안전성 문제가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미국산 소고기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자라나는 학생들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으므로 안전성이 과학적으로 담보될 때까지 이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지환(여의도통신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