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곤 前 광복회장 별세

중국을 누비던 담양의 호랑이가 영면(永眠)의 눈을 감았다.

항일독립투사로 푸른 대나무의 애국충절을 만주벌판에 떨친 김승곤 전 광복회장이 향년 93세를 일기로 지난달 24일 파란만장했던 독립투쟁의 역사를 마감했다.

읍 객사리가 고향인 선생은 1933년 다니던 학교마저 뒤로 한 채 “임시정부가 일본 앞잡이를 처단할 단원을 모집한다”는 소문 한마디를 듣고 부모님 몰래 상하이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때 선생의 나이 18세.

상하이에 도착한 선생은 그해 9월 1일 조선의열단 군사정치 제2기 간부학교(=중국 군사위원회 정훈연구반)에 입교해 학기를 마치고 다음해인 1934년 장제스가 이끈 중국 뤄양(洛陽)육군사관학교를 거쳐 1935년 민족혁명당에 가입한다. 선생은 거기서 석문룡(石文龍), 최성장(崔成章), 하동진(河東振) 등 동지들과 함께 난징 민족혁명당 특무부 간부로서 일본의 밀정을 조사·보고하는 등 비밀정보요원으로 활동해 혁혁한 공을 세우며 기민하고 영특한 인재로서 주목을 받는다.

이후 선생은 1938년 10월 10일 조선의용대 창설에 앞장서 담양 청년의 기백을 만방에 떨치며 1939년 참전하게 되니 그 전투가 바로 세계 전쟁사에 이름을 남긴 ‘제1차 창사(長沙)대회전’

1939년 중국 후난성 창사 제9전구지역에 집결한 조선의용대와 중국군은 그해 말 연합작전으로 100여명의 병력을 구성했다. 그러나 일본의 병력은 대포와 기관총 7정, 무장병력 600명의 대군.

이에 굴하지 않기 위해 조선의용군은 첫 전투에 임하기 전 정신무장에 혼신을 다한다. 그들이 외쳤던 구호는 “3일 동안 굶고 잠 안자고 안 씻는다”였다.

인간의 극한까지 도달한 그들의 다짐은 전투에 임하자 괴력을 발휘한다. 일당백의 기세로 일본군을 도륙한 조선의용군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일본군 100여명을 전사시키는 대첩을 기록한다.

이후 선생은 구룡산과 오봉산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수십차례의 전투와 유격전을 펼치며 많은 전과를 올리던 중 광복군에 편입된다. 1942년 4월 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 조선의용대를 광복군(창군 1940년 9월 17일)에 정식으로 편입했기 때문이다.

선생은 이후 1943년 4월 임시정부에 소환돼 국무위원회 비서로 근무하다 같은 해 12월 다시 광복군에 입대, 제1지대 부관주임 겸 본부구대장으로 활동한 뒤 1945년 6월에는 광복군 총사령부 정훈처에 몸을 담았다.

대원들을 곤명미군특수기갑부대(OSS)로 파견해 훈련시키며 한·미 합동으로 국내 진공작전을 계획 중이던 선생은 중국 충칭(重慶)에서 갑작스런 일본군의 항복을 받아 해방을 맞았다.

하지만 선생의 귀국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임시정부에 우호적이던 중국정부가 돌변하며 광복군에 해산령을 내리는 바람에 생사고락을 같이하던 동지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그 와중에도 광복군의 잔무를 끝까지 해내며 해방된 지 1년 만에 귀국하게 된다.

목숨 바쳐 지켰던 고국 땅을 밟기 위해 1946년 7월 미군 수송선에 몸을 실은 선생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갈 곳이 없었다. 자유당 정권은 중국에서의 임시정부 활동을 숨기기에 급급했으며 친일파들이 대거 발탁돼 서울의 치안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한 평생 독립투사들의 역사와 유산, 기록의 복원과 보존에 힘써온 선생은 1992년~1996년 광복회 제12대 회장을 지냈으며 1995년엔 독립기념관 이사장을 역임했다.

또 대한애국동지회 회장과 한국독립동지회 이사장에 계속 몸담아 오면서 눈감는 그 날까지 헌신해 애국애족의 선봉정신을 놓지 않았다.

1915년생인 선생은 1928년 2월 담양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으며 “담양에서 학교를 다니다 중국으로 건너갔다”는 선생의 말을 미루어 보면 담양중학교를 다녔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으며 장례는 광복회장으로 치러졌다. 유족으로 종주와 종택 등 2남 2녀가 있으며 이른 망명으로 인해 현재 담양에는 선생의 친척이 거주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중국 벌판을 주름잡던 담양의 호랑이는 대나무의 푸른 절개를 가슴에 안은 채 서울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몸을 뉘었다. /서영준 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