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지방자치단체마다 고유의 인지도를 활성화하고 높이기 위해 모든 수단을 총동원 하고 있다. 농도(農道)는 농도대로 공업도시는 공업도시대로 자신들의 실정에 맞게 장점을 최대한 살려 지역가치를 높이기 위해 막대한 자원을 쏟아 붇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지구촌 각 지역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으며 지역명(地域名)이 곧 상품이 되는 시대이다. 그러나 담양은 광주와 인접해 있다는 사실만으로 환산할 수 없는 피해를 보고 있다. 이에 본지는 창간5주년 특별기획으로 ‘잃어버린 브랜드를 다시 찾자’라는 제하의 특집을 준비했다. 이 기획취재는 오랜 세월 담양 땅에서 담양과 함께 해오면서도 힘의 논리에 밀려 제 이름을 갖지 못한 채 남의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는 우리 것의 실상을 취재 보도하고 이를 다시 우리의 것으로 되찾기 위한 계기를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했다.(편집자)

1. 담양 땅에 있는 광주호

‘배롱나무’없는‘자미축제’

담양은 언제부터라 말할 것 없이 ‘대나무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마 국정교과서제도가 시행된 이후 국민들에게 그렇게 각인된 것 같다.

사회책 어디엔가 나온 우리나라 지도에 각 지방 특산물이 그려져 있고 그 그림 속의 ‘담양의 특산물-죽제품’을 본 사람이면 평생토록 ‘담양-죽제품’이며 ‘순창-고추장’이다.

올림픽이 끝나고 1990년대 초반 마이카시대가 열리면서 여행은 활성화됐고 조그마했던 ‘돼지갈비식당’들은 중소기업을 넘기 시작했다.

이때 건축학도나 여행가들에게 또 하나의 교과서가 있었으니 1993년 세상에 나온 ‘나의문화유산답사기’이다. 지은이 유홍준 씨는 이 책으로 문화재청장이 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게다.

‘나의문화유산답사기’에 소개된 소쇄원은 건축학도나 여행가를 넘어 일반인들에까지 가사문학권에 대한 인지도를 높였으며 소쇄원을 필두로 식영정, 면앙정 등 ‘정자문화권’이라는 관광벨트로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자문화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남면 가사문학관 주변을 둘러보면 이곳이 담양인지 광주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그곳이 광주와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핵심은 그게 아니다. 원래 이 정자문화권 전역이 담양이었는데 행정구역 변경으로 광주가 끼어들었으니 ‘우리 것을 빼앗겼다는 사실’에 더 분개한다.

따라서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충효동과 덕의동이 예전엔 담양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가사문학권을 찾은 관광객은 그곳이 광주인지 담양인지에 대해 사실 관심 없다. 또 가사문학권이 ‘潭陽’이라는 것도 모두 알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요지는 그곳이 지도상 담양인지 광주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담양=가사문학권’이라는 등식이 얼마나 관광객들의 뇌리에 인식되는가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가사문학권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광주호’는 ‘담양호’가 아닌 ‘광주호’로 불러지고 있으며 광주 북구는 마치 ‘가사문학권’이 광주에 속해 있는 양 나팔을 불며 ‘자미축제’ 등을 앞세워 호가호위하고 있다.

자미(紫薇)는 배롱나무 또는 백일홍(百日紅)을 일컫는 말로 셋 모두는 같은 말이다. 담양은 봉산면을 위시해 남면, 고서면 등 군내 곳곳에 배롱나무가 심어져 그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명옥헌은 배롱나무 조경 중 으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광주 북구를 보자. 북구청을 가운데로 배롱나무가 심어진 곳을 어느 한 곳이라도 찾아보자. 배롱나무가 어떻게 생긴 나무인지 아는 사람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광주 북구는 ‘자미(紫薇)’를 운운하며 가사문학권에 줄을 대려 하고 있으며 가사문학권이 마치 광주에 그 연원을 둔 것처럼 ‘쇼’를 하고 있다.

‘영산강개발사업’

‘광주호’문제 1960년대까지 올라간다. 65년 농촌근대화사업이 태동할 당시 67년과 68년의 대가뭄은 ‘영산강종합개발계획’에 불을 당겼다.

1970년대 들어 제1, 2차 경제개발계획으로 급속한 성장을 이룩한 정부는 상대적으로 낙후된 농업부문을 일으켜야 한다는 필요성과 함께 그때까지도 중요한 문제였던 식량자급을 목표로 삼게 된다.

소규모·산발적이었던 농업분야개발은 1969년 5월 차관협정 체결로 탄력 받아 대단위방식으로 바뀌었으며 1972~81년에 실시된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 일환으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이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 안에 4대강 유역개발계획이 있고 그 4대강 중 하나가 영산강으로 1단계 사업(영산강개발1단계사업)은 1976년 완료됐으며 영산강하구언은 2단계 사업으로 1981년 완료됐다.

당시 1단계 사업으로 영산강 상류엔 4개의 댐이 만들어졌는데 현재의 나주호와 장성호, 담양호 그리고 문제의 ‘광주호’이다.

‘광주호 혹은 담양제2호’

담수면적 180.6ha로 비교적 작은 호(湖)인 광주호. 현재 이름은 광주호다. 사실 이름만 ‘광주’인 이 호(湖)는 모두가 알다시피 광주완 아무런 관련 없다. 광주사람들은 이 물을 마시지도 쓰지도 않으며 심지어 댐 본래의 목적대로 농사를 짓는데 쓰지도 않는다.

‘혹시나’ 하고 살펴보았으나 ‘역시나’이다.

광주호 수문을 빠져나온 1520만 톤의 물은 2개의 간선수로를 타고 1646.8ha의 대지를 적신다. 지선수로는 68조 57km이다. 동부와 서부로 나뉜 2개의 간선수로는 36.5km로 고서와 창평, 봉산의 젖줄인 것이다.

동부간선은 길이가 20.9km로 고읍양수장과 후산양수장, 속아양수장을 거쳐 각 지선을 타고 43개 방수문을 통해 ‘생명수’를 토해낸다.

호를 빠져나온 동부간선의 생명수는 고서-창평-무정-담양읍을 달려 담양IC와 무정식당 사이에서 그 끝을 맞게 되며 20.9km모두 한국농촌공사 담양지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서부간선은 15.6km로 5.18국립묘지 방향으로 고서를 끼고 돌다 20개의 방수문으로 대지를 적신 다음 태령(용전)에서 멈춘다.

15.6km 중 10km만 담양지사에서 관리하며 나머지 5.6km는 광주지사에서 관리한다. 그렇다고 해서 5.6km 구간의 물이 광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물이 자원인 시대. 광주호의 물은 왜 광주와 아무런 관련이 없을까. 답은 명쾌하고 단순하다. 담양에서 흘러온 물, 담양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광주와는 ‘맺을 수 없는 인연’인 것이다.

‘왜 광주호가 됐나?’

영산강1단계사업이 마무리를 짓는 1976년 당시 호(湖)의 명명(命名)에 대한 최초의 안(案)은 호가 위치한 마을이나 지역의 이름, 명승을 따서 짓기로 했다.

이에 따라 담양호는 영산강 시원인 용소의 이름을 따서 용소호로, 나주호는 다도호로, 장성호는 용강호라 이름 짓기로 했다.

그러나 전국적인 인지도 상승을 위해 더 큰 단위의 지역명을 쓰기로 했고 이에 따라 현재의 나주, 장성, 담양호로 이름 지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담양호가 두 개가 생길 판이었다. 다른 곳이 모두 호(湖)가 위치한 군명(郡名)을 따서 호(湖)의 이름을 지었으므로 담양도 이에 따라 담양호라 이름 지으려 하는데 담양군엔 두 개의 댐이 생겼으니 담양 제1호, 담양 제2호라 하자는 의견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때 광주시는 댐이 생기기 전 흘렀던 개천이 광주에도 걸쳐져 있었으므로 ‘광주호’로 하는 것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는 의견을 강력하게 제시했다. 이에 질세라 담양에선 분명히 담양에 있는 호에 어떻게 ‘광주호’란 이름을 붙일 수 있느냐며 차라리 ‘무등호’라 하자는 의견을 제시하며 팽팽히 맞섰다.

그러나 대도시의 ‘구성요소’와 ‘담양엔 이미 담양호가 있다’는 정부의 밀어붙이기에 밀려 이름은 그렇게 지어져 버렸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1976년 10월 14일에. 광주호로...

‘무대응이 대응-한 번 지은 이름 어떻게 바꿔’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수 없는 게 솔직히 저희의 입장입니다”

자치단체 간 ‘브랜드활성화’를 놓고 이전투구를 벌이는 이때 그 진흙탕 속으로 뛰어들기 싫다는 소리다.

이는 한국농촌공사 본사 시설관리처의 입장으로서 ‘어떠한 식으로든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공식 입장’이었다.

개인적인 의견일 것을 전제로 한 시설관리처 관계자는 “시설물의 이름과 지역대표성의 문제는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름을 바꾼 뒤에 따라오는 문제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학술적인 면에서부터 현실적인 문제까지 헤아릴 수 없다”며 거론 자체를 회피했다.

오히려 “이런 문제는 처음부터 지역의 문제로 한국농촌공사 본사보다는 지사에서 다루는 것이 원칙이다”며 행여 불똥이 튈까 노심초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담양지사에서는 “본사에 알아봐야 한다”는 뻔한 대답 뒤 개인적 추측임을 전제로 “70년대 댐 공사 당시 사업주체는 농수산부장관이었고 시행처는 농업진흥공사였다. 그러나 4개의 시·군이 걸쳐져 있는 사업이었으므로 농업진흥공사 단독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용지매수에 대한 업무는 각 시·군에 위임됐었다. 따라서 많은 부분 郡도 이 사업에 개입하고 있었을 것이며 명명 당시 의견을 조율했을 것인데 이제 와서 이름을 바꾸자고 하면 이치에 안 맞을 것 같다”며 한국농촌공사의 손을 들어 줬다.

‘소년 송강과 자미탄’

호남사림의 좌장역할을 하고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남긴 송강, 송강정은 죽록천이 앞으로 흐르고 증암천이 흐르는 식영정을 바라보며 평야는 멀리 달려 삼인산까지 이어진다.

어린 송강이 창평에 살고 있던 어느 해 여름, 둘째 형 소(沼)를 만나러 어머니와 함게 길을 떠났다. 둘째 형은 과거를 준비하던 중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벼슬길에 통분과 환멸을 느껴 이를 포기하고 처가가 있는 순천으로 내려가 살고 있었다.

당시엔 순천으로 가려면 반드시 성산을 거쳐야만 했다. 너무도 더운 여름날이라 송강은 성산을 지나는 길에 개울(자미탄 紫薇灘)에 들어가 멱을 감았다.

이 무렵 김윤제는 벼슬을 잠시 그만두고 성산 맞은편 작은 구릉에 환벽당을 짓고 한가로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여름날 졸음에 겨워 잠시 눈을 붙이노라니 앞개울에서 한 마리 용이 이리저리 노니는 꿈을 꿨다. 너무도 생생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자미탄으로 눈길을 돌렸다.

마침 개울에서 멱을 감고 있는 소년이 눈에 띄었다. 한 눈에 비범한 기골을 알아본 그는 소년을 불러 여러 가지 문답을 해보았다. 참으로 영특했다. 그리해 그는 송강의 순천행을 만류시키고 자기 문하에 두고서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김윤제는 나중에 송강의 처외숙이 된다.

이처럼 송강이 용(龍)으로 환신했던 곳이 자미탄(紫薇灘)인데 ‘자미’의 뜻은 앞서 보았고 탄(灘)은 여울이나 물가를 뜻하는 것으로 우리가 ‘정자문화권’이라 부르는 곳을 끼고 돌며 흐르는 개울들을 한데 모아 ‘자미탄’이라 한다.

현재는 그 자미탄이 흘러들어 광주호에 이른다. 그런데 이런 역사적 흥미와 진지한 사실이 있는 이름은 팽개쳐 두고 아무 연관도 없는 ‘광주호’란 있을 수 없다.

이제부턴 담양에서라도 원이름을 살려 ‘자미탄호(紫薇灘湖)’라 불러야 한다. 그 시절 선비들의 풍류가 오늘날 관광자원이 되어 후손들에게 선물을 주고 있는데 그 뜻은 받들지 못 할망정 느닷없는 ‘갖다 붙이기’ 이제 고쳐야 한다. /서영준 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