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화사 내 묵담유물관에 보관된 불조역대통재를 동자승이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전국 최대 15m 높이를 자랑하는 석조미륵대불이 조용히 내려다보는 가운데 용화사를 찾았다. 용화사 내 묵담유물관에 소장된 불조역대통재(佛祖歷代通載)는 보존이 잘 돼있고 우리 곁에 가까이 있어 다른 문화재들과 비교해 그 내·외형적 면에 있어 모자람이 없다.

그러나 고귀한 문화재라도 그 가치를 알지 못하면 문화재는 그저 오래된 골동품일 뿐이다.
유일하게 전질이 보존돼 역사적 사료로서 여러 방면으로 가치가 높은 보물 제737호 불조역대통재를 알아본다.

“불조역대통재(佛祖歷代通載)는…”

불조역대통재는 중국 원나라의 염상(念常)이 편술한 것으로 석가여래 탄신 때부터 원나라 원통 2년(고려 충숙왕 복위 3년 해인 1334년)까지 학덕이 높은 스님들에 대한 전기이다.

이 책은 편년체(연월일을 기준으로 날짜순으로 적는 방식)로 수록됐으며 목판본으로 총 22권 7책이다. 이 책을 옮겨 쓴 김수온(金守溫)의 발문(跋文: 책의 간략한 내용과 간행에 관계된 일을 적은 글)에 의하면 성종 3년(1472) 인수대비 한씨(덕종비)가 승하한 세조와 예종의 명복을 빌고 정희대왕비 윤씨, 성종, 성종의 비인 공혜왕후 한씨의 장수를 빌고자 여러 곳에서 법화경(法華經) 등 29종의 불교경전을 간행케 했는데 이 불조역대통재가 그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불조역대통재는 모두 30부 인쇄했는데 용화사에 보관된 본만 유일하게 빠짐없이 전해오는 완질본으로 조선 전기의 목판인쇄술과 왕실의 불교신앙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다.

권22 끝의 하(下) 표지 이면의 우측 아랫부분 기록에 의하면 묵담종사가 1896년에 은사로부터 대대로 전수 받아 간직해온 수택본(手澤本)이 담양의 용화사에 전해져 현재 용화사 주지(住持) 스님에게 전해졌다는 내용이 있다.

한편 부산 범어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불조역대통재(시도유형문화재 제39호 부산 금정구)는 1576년(선조 9년)에 전라도의 사자산(獅子山) 쌍봉사(雙峰寺)에서 중·개간(重開刊)한 것으로 원래는 22권 10책이나 제2책(권 2∼5)이 빠진 채 모두 9책만 전해져 오고 있어 용화사 불조역대통재와 좋은 비교자료가 되고 있다.

서지학(書誌學)적 접근

▲ 불조역대통재는 우리나라 전통의 선장(線裝)과 인쇄술 등을 알 수 있어 조선초기의 목판인쇄술과 왕실의 불교신앙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먼저 불조역대통재는 우리나라의 서지학적 측면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

1982년 11월 9일 보물 제737호로 지정된 용화사 불조역대통재는 목판본으로 일곱 책(冊)으로 구성됐다. 각 책은 다시 권(卷)으로 구성돼 1권부터 22권까지 있으며 장책법(粧冊法: 책 제본의 방식)은 선장(線裝)이다.

우리나라 고서 장책법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선장은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해 그 방식이 특이하며 기술이 월등하다. 우리나라 선장본은 표지를 누런색으로 물들이고 끈은 붉은색으로 물들여 5침으로 철장(綴粧)(구멍을 다섯 군데 내어 묶는 방식)하는 것이 일반적인 장책법이다.

중국과 일본은 책의 크기에 따라 4침 아니면 6침, 큰 책에 있어서는 간혹 8침으로 철장한 것이 있으나 우리나라는 크기 여하를 막론하고 모두 5침으로 철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 외형에 의해 한국본의 특성을 곧 식별해낼 수 있다.

또한 책 표지에 다양한 표지문양이 날압(捺押)되어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것도 우리나라 책에서만 볼 수 있는 특성 중 하나다.

서지학적 측면에서 각 책의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책 佛祖歷代通載 一之四 (불조역대통재 권 1~4)
- 좌우쌍변(左右雙邊), 반곽(半郭) 20.4cm×13.0cm, 유계(有界), 반엽(半葉) 8행(行) 자수부정(字數不定), 주쌍행(註雙行),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 28.2cm×16.8cm

제2책 佛祖歷代通載 五之八 (불조역대통재 권 5~8)
- 좌우쌍변(左右雙邊), 반곽(半郭) 20.8cm(18.8cm)×13.4cm, 유계(有界), 반엽(半葉) 10행(行) 22자(字), 주쌍행(註雙行),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 28.2cm×16.8cm

제3책 佛祖歷代通載 九之十二 (불조역대통재 권 9~12)
- 좌우쌍변(左右雙邊), 반곽(半郭) 21.3cm(19.4cm)×13.2cm, 유계(有界), 반엽(半葉) 10행(行) 22자(字), 주쌍행(註雙行),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 28.2cm×16.8cm

제4책 佛祖歷代通載 十三之十五 (불조역대통재 권 13~15)
- 좌우쌍변(左右雙邊), 반곽(半郭) 20.2cm(18.2cm)×13.2cm, 유계(有界), 반엽(半葉) 10행(行) 22자(字), 주쌍행(註雙行),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 28.2cm×16.8cm

제5책 佛祖歷代通載 十六之十八 (불조역대통재 권 16~18)
- 좌우쌍변(左右雙邊), 반곽(半郭) 20.2cm(18.2cm)×13.2cm, 유계(有界), 반엽(半葉) 10행(行) 22자(字), 주쌍행(註雙行),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 28.2cm×16.8cm

제6책 佛祖歷代通載 十九之二十 (불조역대통재 권 19~20)
- 좌우쌍변(左右雙邊), 반곽(半郭) 20.2cm(18.2cm)×13.2cm, 유계(有界), 반엽(半葉) 10행(行) 22자(字), 주쌍행(註雙行),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 28.2cm×16.8cm

제7책 佛祖歷代通載 二十一之二十二 (불조역대통재 권 21~22)
- 좌우쌍변(左右雙邊), 반곽(半郭) 20.2cm(18.2cm)×13.2cm, 유계(有界), 반엽(半葉) 10행(行) 22자(字), 주쌍행(註雙行),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 28.2cm×16.8cm

(그림출처-문화재청)

여기서 좌우쌍변, 반곽, 유계, 반엽, 주쌍행, 상하내향흑어미에 대해 알아본다.

먼저 책의 사주(四周)에 돌려진 검은 선을 '광곽(匡郭)' 또는 ‘변란(邊欄)’이라 하며 '사주단변(四周單邊)', '사주쌍변(四周雙邊)', '좌우쌍변(左右雙邊)' 등이 있다. '사주단변'은 사주에 하나의 검은 선이 돌려진 것이고 '사주쌍변'은 사주에 두개의 검은 선이 돌려진 것을 이른다. '좌우쌍변'은 사주의 위 아래쪽 가에 검은 단선이 있고 왼쪽과 오른쪽 가에 검은 쌍선이 있는 것을 말한다.

반곽(半郭)은 책의 한쪽 사주를 의미하는 것으로 오른쪽과 왼쪽을 함께 두르는 광곽과 달리 한쪽만을 보는 것으로 반곽인 경우 자수나 행렬의 수를 한쪽만 계산하게 된다.

유계(有界)는 계선(界線)의 종류로 본문의 각 줄 사이를 구분하기 위해 그은 선을 계선(界線)이라 하며 간인본(刊印本)에 나타난다. 계선이 있으면 '유계(有界)' 없으면 '무계(無界)'라 한다.

반엽(半葉)은 행관(行款)에 관련된 것으로 행관은 한 장에 수록된 본문의 행수와 한 행에 수록된 글자수를 가리킨다. 권자본(卷子本), 선풍엽(旋風葉)과 같이 판심(版心)이 없는 경우는 한 장에 수록된 총 항수와 항에 수록된 자수가 된다. 그러나 호접장(蝴蝶裝), 포배장(包背裝), 선장본(線裝本)과 같이 판심이 있는 것은 반엽(半葉)의 행자수를 표시한다. 용화사 불조역대통재는 판심이 있어 반엽의 행자수로 표시한다.

주쌍행(註雙行)은 하단에 적힌 주석이 두 줄로 돼있다는 의미이다.

상하내향흑어미는 어미(魚尾)의 한 종류로 어미란 판구 중간에 있는 물고기 꼬리와 같은 문양을 말한다.

어미는 페이지를 접는 표지역할을 하며 어미의 바탕이 흰색이면 '백어미(白魚尾)', 검은 바탕이면 '흑어미(黑魚尾)'라 이른다. 또 어미의 수가 하나이면 '단어미(單魚尾)', 둘이면 '쌍어미(雙魚尾)'라 하며 어미의 수와 위치에 따라 '상어미(上魚尾)', '하어미(下魚尾)', '상하하향어미(上下下向魚尾)', ‘상하내향어미(上下內向魚尾)' 등이 있다.

어미에 꽃잎문양이 있으면 ‘화문어미’(花紋魚尾)라 하는데 그 화문수에 따라 '이엽화문어미(二葉花紋魚尾)', 혹은 '삼엽화문어미(三葉花紋魚尾)' 등으로 불리운다.

묵담 대종사

불조역대통재가 소장된 용화사는 1934년 3월 8일 백양사 차학신스님이 백양사 포교당으로 출발한 것이 효시가 됐으나 어려운 여건상 민가에 팔렸다가 1945년 해방 전 담양불교청년회와 신도회 등의 권청으로 백양사 청류암에 주석하던 백양사 묵담성우 대종사에 의해 창건됐다.

불조역대통재와 용화사의 인연은 묵담큰스님이 용화사를 창건하고 대대로 전해 내려온 불조역대통재를 보관하게 된데서 그 인연이 시작된다. 특히 묵담큰스님은 한국전쟁 당시 청류암 본법당인 관음전이 인민군에 의해 전소됐으나 부처님의 장경(서적) 및 불상 묵서 등을 땅속 항아리에 보관해 유실을 막아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켜온 분이기도 하다.

현대 큰스님의 계보를 잇는 묵담스님에 대한 일화는 많으나 현재 용화사 주지인 수진스님의 말을 빌어 한 가지 소개한다.

“한번은 6.25전란 때 전사한 영혼들이 많은 ‘가마골 용추사’에서 수륙재를 지내려고 그곳에 큰스님께서 도착하시니 마을 사람 여럿이 나와 있으면서 말하기를 “아이구! 어젯밤 꿈을 꿨는데 수많은 영혼들이 나타나 잔치를 벌이고 춤을 추고하더니 오늘 묵담 큰스님께서 오시려고 한 꿈이었는가봐!” 하였다. 죽은 영혼들마저도 큰스님의 오심을 알았던 것 아니었던가 합니다.
이 꿈을 꾸신 보살은 자신의 아들을 묵담스님을 따라 출가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서영준 · 한 얼 記者

▲묵담유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