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2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1510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7월 19일 롯데호텔 2층 에메랄드룸에서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동북아 경제 중심지 도약을 위한 경기도의 비전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기사부터 강연 원고 분량이 기존의 12매에서 20매로 늘어납니다. (편집자주)

“나는 다소 독특한 삶을 살아 왔다. 이 조찬강연에 초청됐던 사람들 중에서는 아마 박노해 시인이 나와 가장 비슷할 것이다.

나는 혁명을 꿈꿨던 사람이다. 덕분에 감옥에도 가고, 고문도 당했다. 민중당에 있다가 민자당에 입당했을 때는 사방에서 비판이 거셌다. 운동권에서는 ‘변절자’라면서 맹비난했고, 민자당에서는 ‘이중간첩’ 정도로 여기며 의심했다. 여러분도 오늘 강연을 들으면서 ‘김문수가 변했다’고 할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그 점을 감안하고 경청해주기 바란다.”

‘왕년의 혁명가’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렇다면 김 지사에게 ‘급격한 변화’의 계기를 제공한 것은 무엇일까. 그는 지사가 되고 나서 방문했던 몇 개의 도시와 나라를 거명했다. 경기도 면적의 40%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크레인의 25%를 불러 모은 두바이가 제일 먼저 언급됐다.

“두바이에서 한국의 삼성이 건설하고 있는 ‘버즈 두바이’에 갔을 때의 일이다. 담당자에게 목표로 하고 있는 건물 높이가 몇 층이냐고 묻자 ‘정하지 않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현재는 162층이 목표이지만 누가 따라오면 더 올라갈 수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무조건(!) 세계 최고의 빌딩을 건설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세계 유일의 7성급 호텔인 ‘버즈 알 아랍’ 호텔에 가봤더니, 객실 202개 모두가 스위트룸이었다. 객실 크기가 51평에서 235평까지였는데, 가장 비싼 숙박료가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2500만원이 넘었다. 두바이 시내에는 똑 같은 건물이 없다. 설계가 같으면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외국인에게는 비자나 세금신고서가 없었다.”

김 지사는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두바이만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지사가 된 뒤 중국과 인도에도 간 적이 있다. 거기서 그는 이 ‘거대한’ 국가들이 얼마나 ‘빠르게’ 변신을 모색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중국의 광동성에는 ‘대학성’이라는 것이 있다. 여의도 면적보다 더 넓은 이곳에는 단 1년 만에 10개 대학이 들어섰는데, 수용된 학생 수만 10만 명이다. 말 그대로 초대형 대학촌 건립을 추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조성했느냐고 묻자 ‘우리는 문화혁명을 하느라 20년이나 늦었기 때문에 밤낮 없이, 휴일 없이 공사를 한다’고 답했다. 인도공과대학(IIT)에는 1500만명의 인도 고교생 중에서 가장 우수한 4900명만 입학할 수 있다. 그 결과 미국 의사의 12%, 영국 의사의 33%, IBM 엔지니어의 28%, NASA 요원의 32%가 인도 출신이라고 한다. IT 분야에서는 인도가 이미 한국을 앞질렀다. 인도의 마이크로소프트로 불리는 인포시스(Infosys)에서도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김 지사는 두바이, 중국, 인도 등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도시와 나라를 직접 방문하면서 마음 한편으로 답답함과 초조감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경기도에는 더 많은 인재, 더 좋은 환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마음껏 활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기도는 두바이보다 면적이 2배 이상 넓고, 인구도 7배나 많다. 2800개의 크고 작은 강과 개울이 있고, 바다와 저수지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러나 경기도에는 7성급 호텔은커녕 5성급 호텔도 없다. 귀신이 곡할 만큼 이상한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세계 최고 건물을 지을 능력이 없는 두바이는 외국 건설사를 불러다가 짓게 하지만 정작 한국은 능력 있는 건설사가 있는데도 국내에선 세계 최고를 짓지 못하게 한다. 도리어 건물을 지으면서 조금 멋이라도 내려고 하면 바로 세무조사가 들어온다. 중국 광동성의 초대형 대학촌 건립도 경기도에선 언감생심이다. 수도권정비법이 대학의 신설, 증설, 이전을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하향평준화 사회에서 선진국 진입은 망상이 아닐 수 없다.”

김 지사가 보기에 경기도에선 ‘귀신이 곡할 만큼 이상한 일’이 너무나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물론 수도권 규제 정책이 수립되고 강화된 데는 그럴 만한 사회적 배경이 있었다. 그러나 ‘경기도지사 김문수’는 지금 그것을 이해할 수도, 수용할 수도 없는 것이다.

“전 세계 48개국에 투자하고 있는 3M이 화성에 공장을 지었다. 준공식에 갔다가 3M 회장과 대화를 나누던 중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회사 지분율에 조금 변동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110억원 정도의 세금을 추가로 물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런 식으로 세금을 물리면 다시는 한국에 오지 않겠다’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세계의 여러 나라 중에서 얼마든지 투자할 곳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외국 기업만 그런 대우를 받은 게 아니다. 인원과 액수가 각각 1161만 명과 39억 달러나 되는 해외쇼핑객을 보자. 최근 여주에 명품 전문 매장이 들어섰는데, 인파가 너무 몰려서 고속도로가 막힐 정도다. 국내에 이렇게 수요가 많은데도 무조건 막으니 그동안 해외로 빠져나간 것 아닌가.”

‘경기도지사 김문수’를 화나게 만드는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군사시설보호구역, 상수원보호구역, 그린벨트 등 ‘경기도의 또 다른 이름’인 수도권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각종 규제가 너무나 많다”고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도에 한국군 전력의 80% 정도가 있다. 우선 용인에 있는 3군사령부가 서부전선을, 평택에 있는 2함대사령부가 서해를 담당하고 있다. 평택의 가장 좋은 땅 130만평이 해군기지에 묶여 있다. 공군도 예외가 아니다. 포천에만 4곳 등 비행장 수십 개가 경기도 전체에 포진해 있다. 해병대사령부도 화성에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군 병력의 90%가 경기도에 집결해 있다.

그러다 보니 연천의 98%, 파주의 93% 등 경기도 곳곳이 군사시설보호구역이다. 한마디로 경기도는 전쟁과 분단의 최대 피해자다. 국가안보를 위해서 수십 년 동안 온갖 손해를 감수해 왔다. 팔당상수원과 그린벨트 규제도 심각하다. 과천의 89%, 하남의 86%가 ‘그린벨트’로 묶여 있지만 실제로는 ‘비닐벨트’와 ‘창고벨트’일 뿐이다.”

그러나 마을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사라진지 이미 오래 된 호남, 영남, 충청 등 농촌지역 입장에선 ‘배부른 투정’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따가운 시선을 감지한 것일까. 김 지사도 강연 말미에는 비전 제시에 주력했다.

“경기도는 한국이 중국과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한 전진기지가 될 것이다. 바다와 철도가 그 길을 열 것이다. 얼마 전에 한국과 중국의 지방정부가 참여하는 ‘황해권시도지사협의회’를 개최한 것도 이것과 무관치 않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기에 언급한 ‘동북아중심국가’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라도 중국의 동해안과 한국의 서해안-남해안을 하나로 묶어내는 ‘환황해권’을 만들어야 한다. 경기도 북부지역도 북핵문제가 잘 해결되면 굉장한 변화가 올 것으로 기대된다. 더 이상 선박이나 비행기가 아니라 육로를 이용해 신의주와 원산까지 갈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경의선을 KTX로 달릴 수 있다면 남북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어디 거기서만 머무르겠는가. 아마 북경도 육로로 가는 날이 올 것이다.”

김 지사는 “경기도가 통일시대를 열어갈 것”이라고 호언했다. “중국의 산동성, 북경시, 천진시, 하북성, 요녕성 등 5개 시?성(市?省)과 한국의 서울, 경기, 인천, 충남, 전북 등 5개 시?도(市?道)가 5+5로 참여하는 황해권시도지사협의회가 전령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도 다시 한 번 덧붙였다.

김 지사의 강연에서 느꼈던 문제점 한 가지만 지적하자. ‘경기도 한계론’이 그것이다. 이날 김 지사는 자매도시인 요녕성(4200만), 경기도(1100만), 가나카와현(800만)의 인구 규모를 비교한 뒤 ‘한·중·일 삼국지’에서 승리하려면 수도권 규모를 더 키워야 한다는, 이른바 ‘대수도론’(수도권 규제를 풀어서 기업의 지방 이전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주창했다.

그런데 요녕성과 산동성(9300만명) 등과 상대하려면 ‘경기도’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수도로 키우자는 현재의 균형발전정책이 더 타당한 것은 아닐까. 발상의 전환은 있되, 그것이 경기도라는 행정구역 안에만 머물러서야 되겠는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사람들에게도 설득력이 있다는 반응을 얻을 때 경기도의 비전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주변’이 없으면 ‘중심’도 없다. /여의도통신 정지환 기자

김문수 도지사의 이력서

▲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부위원장
▲ 민중당 노동위원장
▲ 신한국당 대표특보
▲ 제15, 16, 17대 국회의원
▲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
▲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 노사정위원회 위원
▲ 민생정치연구회 회장
▲ 한나라당 제1사무부총장
▲ 한나라당 기획위원장
▲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장
수상: 녹색정치인상, 환경노동위원회 의정활동 최우수의원상, 15대 국회 의정활동 모범상 외
저서: <80년대를 꿰뚫는 양심수 10인의 항소이유서>, <1992년 노동인권보고서>, <아직도 나는 넥타이가 어색하다>, <지옥철 대통령도 같이 탑시다>, <나의 길 나의 꿈> 외